5월 12, 2017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2


도스가 톨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에 소주나 한잔하자고 했는데 톨스가 마침 자기도 심심하던 차였으니 이따 저녁 때 보자고 하며 흔쾌히 승낙했다. 톨스가 인사동에 괜찮은 주점이 있으니 거기서 보자고 했고 도스는 자기도 들어본 집이라고 하며 그러자고 했다. 

톨스가 인사동 골목에 있는, 지붕이 파란 <그네주점>으로 들어갔는데 익숙한 주점이 아니었다. 앞마당에 있던 그네는 없어졌고 사장도 여자에서 남자로 바뀌어 있었다. 톨스가 의아해하면서 사장을 찾았다. 잠시 뒤 안경을 낀 잘생긴 사장이 나오더니 어서 오시라고 허리를 깊숙히 숙여 인사했다. 톨스가 주점이 바뀐 것이냐고 묻자 새로운 사장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밖으로 나가서 다시 보니 <더불어주점>이라는 간판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장이 하는 말이 그전 사장은 관둔 지 두어 달 지났고 자기가 가게를 어렵사리 인수해서 며칠 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톨스가 마당에 있던 그네는 어디 갔냐고 당황해하면서 물었더니 손님들이 하도 싫어해서 잘라버렸다고 사장이 예의 정중한 태도로 대답했다. 톨스가 손님들이 왜 그네를 싫어했냐고 다시 물으니까, 그네라는 것이 손님을 태워서 즐겁게 해줘야 하는 것인데 허구한 날 고장이 나서 그네 본연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고, 몇 년 전에는 그네를 타던 몇 명이 그만 그네 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크게 다쳤는데 이전 사장은 사고 현장에 즉각 나타나지도 않았고 무려 일곱 시간이나 지난 후에 부시시한 얼굴을 내밀더니 엉뚱한 소리나 해대며 희생자 가족을 욕보였던 일이 있었다고 새로운 사장이 침착하게 답변했다. 사장은 또 그네가 원래 불량품이었던 모양이라고 덧붙였다. 톨스는 대단히 아쉬워하며 오른손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잠시 뒤 도스가 도착했고 둘은 주점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톨스가 "이 주점 사장은 계약기간이 아직 일 년 정도 남았는데 바뀌었다네.” 하니까, 도스가 며칠 전 뉴스에서 봐서 자기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다. 바뀌기 전에 사장 물러나라고 온동네 사람들이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모여서 시위를 했었다고 하며 이제야 속시원하다고 덧붙였다.

메뉴판을 훑어보다가 주문을 막 하려던 차에 노란 머리를 한 어떤 남자가 다가왔다. 그가 자기는 세계 각국 여러 주점에 주류와 안주를 납품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새로 유통하는 막걸리가 있는데 한번 드셔보시라고 권했다. 두 병 주문하면 한 병을 공짜로 준다는 것이었다. 톨스가 좋다고 했더니 그 남자가 얼른 막걸리 세 병을 가지고 다시 나타났다. 도스가 그 남자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었는데 노란 머리 남자가 자기 이름은 도널드 트럼프라고 대답했다. 어느 나라 분이냐고 또 물어보니 이름에서 오리 냄새가 나는 도널드 트럼프가 자기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어메리카 사람이라고 떵떵거리며 말했다. 또 그는 북한과 중국에 주류와 참외를 독점 공급하기 위해 얼마 전에 성주에서 10억 달러짜리 계약을 맺었다고 하며 계약 과정에서 엄청 고생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친구가 된 기념으로 오늘 마시는 막걸리를 전부 공짜로 제공하겠다고 선언했다. 어찌나 건방지게 말하던지 도스는 짜증이 났지만 초면이라 참기로 했다.  

트럼프가 자기는 세계 여러 주점을 다녀봤는데 여기 <더불어주점> 사장님은 참 잘생긴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또 저번 여자 사장은 약간 이상해서 자기 회사가 큰 이문을 남길 수 있었는데 이번 사장은 이문은커녕 손해만 볼 것 같다고 말하며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어메리카 본사에서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도스가 트럼프에게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어메리카 때문에 앞으로 참외도 마음놓고 못 먹게 생겼다고 말했더니 트럼프가 걱정할 것 없다고 큰소리치며, 자기가 앞으로 원하시면 언제든지 참외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톨스는 그깟 참외좀 안 먹으면 어떠냐고 도스를 구박하듯 말했고 도스는 공짜 참외는 필요 없다며 대단히 도덕적인 분위기가 나도록 말했다. 

톨스가 새로운 사장을 불러 막걸리 한 잔을 권하고 나서는, 어쨋든 주점 사장이 된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기 옆에 계시는 젊은 남자는 누구냐고 물었는데 사장이 자기 일을 보좌하는 지배인인데 아주 매실매실한 사람이라고 공손하게 답변했다. 이에 톨스가 아니 저 사람은 예전에 데모 엄청했던 그 사람 아니냐고, 어떻게 저런 사람을 지배인으로 채용했냐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도스가 톨스에게 좀 조용히 하라고 하며, 저분은 자기도 잘 아는데 젊고 유능하며 애사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또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게 술을 마실 수 있는 이유는 저 젊은 지배인이 예전에 구속과 억압에 항거하는 데모를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런 자유가 생긴 것이라며 합리적인 반론을 제기했다. 
옆에 있던 이름에서 오리 냄새나는 도널드 트럼프가 트림을 길게 하더니, 자기가 막걸리는 처음 마셔보는데 참 맛있는 술이라고 선언하더니, 서로 트집을 잡는 그런 얘기는 그만하고 술이나 흥겹게 마셔보자고 했다. 셋은 찌그러진 양은그릇에 막걸리를 가득 채운 후 건배를 했다. 건배를 너무 세게한 나머지 그만 트럼프가 술잔을 놓치고 말았고 하필 톨스 무릎으로 떨어져버렸다. 바지가 다 젖어버렸는데도 톨스는 끽소리 못하고 오히려 트럼프 눈치만 보고 있었고 트럼프는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도스가 이를 이상히 여겨 나중에 화장실에서 물었더니 트럼프가 성주에서 참외 독점 계약을 체결할 때 연설문을 써주는 등 자기가 몇몇 도움을 줬고 그 대가로 뒷돈을 좀 받았노라고 술김에 고백했다. 도스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껄껄차며 벌 받는다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친구라고 더 심한 말은 하지 않았다. 

막걸리가 서너 순배 돌자 셋은 어느덧 정신이 자몽했다. 아슴아슴한 정신으로 트럼프가 화장실좀 다녀오겠노라고 하며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그 틈에 도스가 오리새끼 같은 도널드 트럼프를 씹기 시작했다. "아니 참외 농사를 하려면 자기네 나라에서 하던지 왜 남의 나라에 와서 세상 시끄럽게 하는지 모르겠네” 라고 하니까 듣다 못한 톨스가 트럼프를 욕되게 하면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또 자기가 받은 리베이트가 꽤 되니 장차 술을 많이 사겠다고 은근슬쩍 회유를 하기도 했다. 

이때 옆 테이블에서 갑자기 큰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빨간색 점퍼, 녹색 점퍼, 하늘색 점퍼, 노란색 점퍼를 입은 네 사람이 격하게  뭔가 토론을 하고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자기들도 이 주점을 인수하려고 했는데 저 사장때문에 다 망쳤다고 하는 것이었다. 

빨간 점퍼를 입은 남자가 "저 새 사장은 종북좌파인데 장차 이 주점 앞날이 걱정된다.” 라고 했다.
녹색 점퍼를 입은 남자는  "제가 바로 찰습니닼, 이 가게를 인수할 사람이 누굽니꽠", 하며 괴상하게 소리를 지르면서 <국민의주점>이란 간판을 달지 못해 너무 아쉽다고 속상해했다. 
하늘색 점퍼를 입은 남자는 자기가 가장 바른 사람이라고 하며 주점 인수를 못해 아쉽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계약한 성주 참외 독점권을 적극 지지한다.” 라고 엉뚱한 말을 했다. 
노란 점퍼를 입은 사람은 유일하게 여자였는데 "손님들이 당당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가게를 만들고 싶었는데 아쉽다.” 라고 말하더니 사실 자기도 이 주점을 인수할 것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도스가 그들에게 공정한 경쟁에서 졌다면 패배를 받아들이고 축하해 주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 이미 주점 사장은 결정됐는데 뭘 그리 시끄럽게 떠드냐고 하며 끼어들었다. 이때 빨간 점퍼가 탁자를 탁치며 벌떡 일어나더니 그런 말을 할 것 같으면 낙동강에 가서 빠져 죽으라고 소리쳤다. 이에 도스가 자기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와서 낙동강이 어딘지도 모르지만 초면에 말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고 하니까, 빨간 점퍼가 "이런 정신나간 러시아 영감탱이 같으니” 라고 말했다. 도스가 다시 예전에 뇌물 받은 건으로 재판 중인 것으로 아는데 꼭 유죄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빨간 점퍼가 마치 돼지발정제를 먹은 것처럼 흥분하며 쌍소리를 계속했다. 
주점이 너무 소란스럽자 녹색 점퍼가 “왜들 이러십니꽈앜, 조용히좀 하십시요옼,” 하면서 끼어 들었다. 도스가 “목소리가 원래 그렇습니꽈앜?”라고 걱정스럽게 물었더니, 녹색 점퍼는 자기는 원래 의사 출신이라며 그런 건 걱정할 것 없다고 꽥꽥거렸다. 
그때 어디서 “아빠”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엄청나게 이쁘게 생긴 아가씨가 하늘색 점퍼에게로 오는 것이었다. 하늘색 점퍼는 자기 딸 유담이라고 좌중에게 소개하며 자랑스럽다는 듯 딸을 껴안았고 곧 둘은 먼저 주점을 나갔다. 톨스는 자기가 아는 유담은 매우 뚱뚱한 남잔데 이상하다며 갸우뚱했다. 

도스와 톨스도 이만 주점에서 나가려고 하자 트럼프가 둘에게 악수를 청하고는 다음에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어메리카에 오시면 자기가 잘 모시겠다고 하며 명함을 건넸다. 이어 그들은 <더불어주점> 사장과도 인사를 나눴다. 앞으로는 사장인 자신이 손님들과 직접 소통하며 새로운 주점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고 다른 주점 손님도 자기 손님처럼 모시겠다고 하며 문 밖까지 따라나와 머리가 땅에 닿도록 인사했다. 도스는 새 사장이 참 친절하다고 생각했고 톨스 역시 일단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더 지켜보겠다고 생각했다. 주점 안에서 “사장님 여기 계산요옼, 얼맘니까앜”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예의 녹색 점퍼 목소리였다. 

밖에는 대기 손님이 구름처럼 몰려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톨스가 놀라자, 도스가 저 사장님은 원래 4년 전에 이 가게를 인수하려다 실패했었고 이번에 다시 도전해서 마침내 주점을 인수했다고 말하며, 진정 손님을 섬길 줄 아는 마음이 아주 호박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톨스는 자기는 지난번 사장이 더 나은 것 같다고 하며 도스가 하는 말이 자기에겐 오이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살짝 흥분한 도스가 톨스에게 세상 일을 좀 제대로 보고 고추하라고 말하면서 얼른 2차나 가자고 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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