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 2017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1

어느날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는 선릉역에서 만나 소주 한잔 하기로 했다. 톨스토이가 자기는 백작 아들이니 오늘은 내가 쏘겠다고 선언하며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었다. 
도스토옙스키가 그렇다면 자기는 한 번도 못 먹어본 참치회를 먹고 싶다고, 가능하면 소주도 몇 잔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톨스토이에게 참치를 쏠 수 있느냐고 짐짓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톨스토이는 며칠 전 <안나 카레니나> 원고료가 입금됐으니 오늘은 기꺼이 자기가 쏘겠다고 선언하며 네이버 블로그에서 찾아보니 선릉역 근처에서는 [페테르부르크 참칫집]이 제일 유명하다고 하면서 그 가게로 가는 게 어떻겠냐고 당당하게 물었다.  
두 사람은 즉시 의견 일치를 선언하며 네이버 블로그에서 찾은 페테르부르크 참칫집으로 향했다. 

페테르부르크 참칫집으로 들어가니 모든 종업원이 동시에 큰소리로 어서 오시라고 소리치며 몇 분인지, 룸이 좋을지 홀이 좋을지 물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떼거지로 큰소리로 인사하는 경우는 생전 처음 본다고 깜짝 놀라며 오늘은 자기 친구 톨스토이가 쏘기로 했기 때문에 모든 결정권은 톨스토이에게 있다며 그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 이어 톨스토이는 조용한 룸이면 좋겠다고 하며 이집에서 가장 맛있는 참치로 달라고 했다. 
방바닥이 파인 룸에 들어가서 도스토옙스키는 이런 방은 처음 본다고 말하며 잘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의아해했다. 톨스토이가 이 방에서는 아무도 자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소주는 빈속에 일잔이 최고라고 말하며 잔을 채웠다. 둘은 잔을 부딪히며 내일은 선거일이고 빨간날이니 오늘 한번 신나게 마셔보자고 했다. 

톨스토이가 우리가 아무리 러시아 사람이라고 하지만 러시아 이름은 너무 어렵다고, 특히 술취한 다음에는 더욱 그렇다고 말하며 취하기 전에 우리 이름은 앞 두 글자만 부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자네는 두 글자만 줄이면 되지만 나는 무려 네 글자를 줄여야 하니 내가 손해라는 생각이 들지만, 실은 내 이름은 도스토예프스키로 네 글자가 아닌 다섯 글자를 줄여야 하지만, 자기가 참치를 얻어 먹는 신세인 만큼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기 이름에 살짝 빌 게이츠 냄새가 난다고 했다. 
여튼 이제 두 사람 이름은 도스와 톨스로 부르기로 합의되었다. 

이윽고 각종 밑반찬과 참치가 들어왔고 참치를 처음 본, 이름에서 빌 게이츠 냄새가 나는 도스는 이게 참치 맞냐고 자기가 생각한 것과 너무 다르다고 의심스럽게 말했다. 톨스는 자기는 백작 아들로서 세상에 좋다는 음식은 다 먹어봐서 안다고 하며 이건 분명 최고급 참치가 맞으니 걱정 말고 많이 먹으라고 말했다. 도스는 평소 네이버 블로그 따윈 믿지 않지만 얻어 먹는 주제에 더 이상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소주 한잔을 원샷하고 참치 한 점을 집어 기름장에 찍은 후 김에 싸서 먹었다. 톨스는 그 모습을 보고 므흣해 하면서 다음에는 백김치에 싸서 한번 먹어보라고 했다. 
톨스가 처음 먹어본 참치 맛이 어떠냐고 물으니 도스는 마치 소고기를 씹는 것 같다고 하며 자기가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고기는 처음 먹어본다고 했다. 톨스가 소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 이름에서 빌 게이츠 냄새가 나는 도스가 자꾸 그러면 이반 데니소비치처럼 감옥에 쳐넣어 버리겠다고 농담을 했다. 

소주가 몇 순배 돌아 얼큰히 취하자 자연스럽게 내일 있을 선거 관련 얘기가 나왔다. 
도스가 자기는 이번에 1번 후보인 라스콜 니코프를 찍을 거라고 말하면서 톨스는 누구를 찍을 것이냐고 물었다. 톨스는 참치 뱃살을 포크로 팍 찍으면서 빨갱이는 절대 안 된다고, 자기는 2번 후보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를 찍을 것이라고 뽐내며 말했다. 
도스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예전에 바람을 핀 적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톨스는 지지 않고 예전에 라스콜 니코프는 도끼로 어떤 노파 대가리를 쳐서 죽이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도스는 그건 자기가 소설에서 꾸며낸 얘기가 와전된 것이라며 실제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었다고 씩씩거렸다. 그는 또 라스콜 니코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사람이며 그가 정권을 잡으면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참치를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톨스가 정치 얘기는 늘 어렵다며 이제 2차를 가자고, 2차는 도스가 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도스는 사실 며칠 전에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원고료가 입금됐으니 2차는 자기가 쏘겠다고 말꼬리를 흐리며 말했다. 이 근처에 자기가 잘 아는 [죄와 벌]이라는 바(bar)가 있다고, 거기서 꼬냑 한잔 하면서 내일 선거 얘기를 계속하자고 했다. 톨스는 그런 바가 다 있냐며 선릉역 주변은 매우 러시아스럽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두 사람은 몸을 휘청거리며 [죄와 벌] 바로 들어갔다. 도스는 왼쪽에 톨스는 오른쪽에 앉았다. 바텐더 언니가 주문을 받으러 오자 도스는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언니가 말하길 자기 이름은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로도바라고 했다. 도스는 이상하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 것 같다고 말하면서 반갑다고 왼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오른쪽에 앉은 톨스가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로도바에게 카페 이름이 어째서 [죄와 벌]이냐고 물었더니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로도바가 술이 죄요, 카드값이 벌이라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톨스는 자기도 소싯적에 글좀 썼는데 거의 노벨문학상감 이름이라고 말했다.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이름에서 빌 게이츠 냄새가 나는 도스가 말하기를, 왼쪽에 앉은 내가 죄요, 오른쪽에 앉은 자네가 벌이구만, 라고 했다.   
메뉴판을 쭉 훑던 도스는 꼬냑을 한 병 주문하고 안주는 서비스로 달라고 했는데 거의 주문과 동시에 꼬냑 한 병과 서비스 안주 김이 나왔다. 도스는 여태 참치를 김에 싸먹고 왔는데 또 김을 주면 어떡하냐고 언니에게 정중하게 불만을 제기하니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로도바가 다른 가게는 대부분 중국산 김을 주는데 우리집은 순수 국산 김이라며 서비스지만 고급 안주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톨스가 끼어들어 우리는 러시아 사람이라서 순수 국산 김이 아니고 순수 외산 김이라고 하며 사실관계를 정확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왼쪽에 앉은 도스가 오른쪽에 앉은 톨스에게 자네도 내일 선거에서 1번 라스콜 니코프를 찍는 게 어떻겠냐고 꼬부라진 혀로 말을 하자, 톨스는 자기는 빨갱이는 절대 안 찍는다고 말했다. 하여 도스가 톨스에게 도대체 빨갱이라는 것이 뭐냐고 물으며 자넨 빨갱이를 본 적이 있는지 어떤 사람이 빨갱이인지 물었다. 톨스가 말하길 1번 후보 라스콜 니코프처럼 사람 대가리를 도끼로 찍어서 죽이는 사람이 바로 빨갱이라고 했다. 도스가 한심하다는 듯이 톨스를 쳐다보며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자기가 소설에서 꾸면낸 얘긴데 자꾸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자네 빼고 누구도 라스콜 니코프가 도끼로 사람 대가리를 찍어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대체 선거 때만 되면 그놈의 빨갱이 얘기를 한다고 이제 그만좀 하라고 말했다. 
똑같은 얘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두 사람을 보던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로도바가 과일 좋은 거 들어왔는데 한번 드셔보겠냐고 도스와 톨스가 만취한 상태임을 이용하여 냅다 물었다. 톨스가 술이 너무 취해서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졸고 있었는데 그 고갯짓을 과일 안주 오더를 컨펌한 것으로 받아 들이고는 커다란 접시에 과일 겨우 몇 개를 담아왔다. 도스가 얼떨결에 과일 조각을 김에 싸서 먹더니 아니 참치 맛이 이상하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로도바가 한심하다는 듯이 도스를 쳐다보며 과일은 김에 싸먹는 게 아니라고 하며 김은 배제시킨 채 단감 조각 한 개를 도스 오빠 입에 넣어 주었다.       
꾸벅 졸던 톨스가 머리를 오른쪽으로 흔들며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로도바에게 지금 몇 시냐고, 근처에 괜찮은 노래방 있냐고 물었다. 언니는 바로 위층이 선릉역에서 가장 유명한 [불러디미르 노래방]이라고 하며 우리 가게 영수증을 제시하면 15% 디스카운트 해준다고 말했다. 그렇게 도스와 톨스 두 사람은 술이 떡이되어 [불러디미르 노래방]으로 올라갔다.

불러디미르 노래방에 도착한 두 사람은 끝도 없는 선거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노래나 신나게 부르자고 하며 도스는 왼손에 톨스는 오른손에 마이크를 잡고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때 갑자기 문이 우당탕 열리더니 어떤 사내가 좌중을 압도하는 모습으로, 회색 넥타이를 머리에 매고 마이크를 와이셔츠 단추 사이에 꽂은 채 나타났다. 마이크는 신기하게도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딱 정중앙에 꽂혀 있었다. 먼저 무례함을 용서해 달라고 말하면서 자기는 옆방 손님인데 이방에서 노래 한 곡 부를 수 있는 영광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어 도스와 톨스 두 사람은 마침 좌우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고 말하며 기꺼이 허락하겠노라고 선언했다. 이에 회색 넥타이를 머리에 매고 마이크를 와이셔츠 단추 사이에 꽂은 남자가 고맙다고 허리 숙여 인사하며 리모콘을 잡으러 가다가 그만 테이블 다리에 다리가 걸려 달이 기울 듯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이때 그의 가슴에 꽂혀 있던 마이크가 명치를 강하게 짓누르는 바람에 엄청난 통증을 느끼자 자기는 다시는 가슴에 마이크를 꽂지 않겠다고 반드시 왼손이나 오른손에 마이크를 잡겠다고 선언하며 거북이 목 감추듯 방을 나가버렸다. 그가 머리에 매고 왔던 회색 넥타이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불러디미르 노래방에서 한바탕 소동이 끝난 후 도스와 톨스는 입가심으로 맥주나 한잔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며 노래방을 나왔다. 이때 이미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도스와 톨스는 선릉역 주변을 기웃거리다 세계맥줏집을 발견하고 거기로 들어갔다. 맥줏집 이름은 신기하게도 [바보 입안]이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았다고,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다고 생각했지만 떡이된 톨스는 그러려니 하고 무시했다. 

톨스는 맥주 두 병과 안주로는 먹태를 시켰다.  

Featured post

저탄고지에서 벗어나기: 닥터쓰*의 거짓말

  내셔널 지오그래픽 에서 1961년부터 2011년까지 50년 동안 전 세계 식단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조사를 했다.  그 중 우리나라 자료만 간략히 정리해 본다. 모든 자료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혀둔다. 일일 섭취 칼로리 대폭 증가...

Popu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