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 2017

임플란트 수술 후기

28개 치아 중에 멀쩡한 이가 몇 개 안 남았다. 
때우고 씌우고 빼고…… 이제 박을 차례다. 그래서 오늘 두 개 박았다.  

치과 문을 열려는데 갑자기 안쪽에서 먼저 문이 열린다. 깜짝이야! 이런 C……
카운터로 가서, 저 왔어요, 라고 낭창낭창하게 말했다. 하나도 안 무서운 것처럼 말한 것 같은데 상대가 그렇게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녀가 피식 웃는다. 가슴이 두근두근 합이 네 근이다. 

기다린다. 들어오세요, 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 말인가, 누구 말인가, 정녕 나란 말인가. 도리가 없다. 
앉았다. 눕힌다. 녹색 천이 온몸을 덮는다. 뭐야 이거. 피가 튀나? 다음에 한다고 할까, 에라 모르겠다. 

찌른다. 얼얼하다. 얼굴에도 녹색 천이 덮힌다. 눈을 감았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폭탄주 원샷하듯 잽싸게 스친다. 후회가 밀려온다. 어금니로 술병 뚜껑을 따는 게 아니었는데…… 그간 마신 술 값에 비하면 오늘 수술비는 껌값이다. 위로가 된다. 

슥슥슥 뭔가로 잇몸을 긁는 듯하다. 드릴 같은 게 새된 소리를 내며 돌기 시작한다. 둔탁한 소리가 나는 드릴이 있고, 훨씬 조용하고 사뿐한 소리가 나는 드릴이 있다. 목공소에서 도는 게 아니다. 내 입 속에서 드릴이 돌고 있다.  
이상하다. 괜찮네. 박고는 있는 건가? 의심이 들었다. 대략 20분 정도 지난 것 같다. 낚싯줄 같은 게 입술에 느껴진다. 끝났구나. 꿰매는 중이구나, 안도의 깊은 한숨이 나왔다. 
임플란트! 아무 것도 아니다. 새벽까지 술 마시는 게 훨~~~~~~씬 힘들다. 

임플란트 수술을 하루 앞둔 어제, 나보다 한두 달 전에 먼저 수술한 어떤 새끼(줄)이 카톡으로 이런 걸 보냈다. 독한 놈!

4월 26, 2017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어떤 아웃도어 브랜드에 영업부장으로 재직 중인 분 이력서를 받았다. 이력서가 조선시대 수묵화도 아니고…... 진정 ‘여백의 미’를 아시는 분인가 보다, 했다.  
전화했다. 이력서가 형편 없다고, 솔직히 말했다. 수정을 요구했다. “아웃도어 영업이라는 것이 다 똑같은 거 아닌가요? 더 이상 어떻게 수정하죠?” 라고 그가 말했다.
내가 말했다. “그럼 뭐하러 이력서를 쓰죠? 그냥 명함 한 장 제출하는 게 어떨까요?”  
그 브랜드 신뢰도가 급추락했다. 대개 부장 이상은 말을 잘 안 듣는다. 

‘모든 초안은 쓰레기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사람들이 왜 초안을 고치지 않고, 다듬지 않고 세상에 내놓는지 모르겠다. 블로그나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글은 말할 것도 없고 이메일이나 문서마저 초안을 고치지 않고 발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며느리가 한약 다리 듯 정성을 다한 글이 있는가 하면 말년 병장 모포 털 듯 대충 쓴 글도 부지기수다.  
글이 마치 우주 대폭발 같다. 혼돈 그 자체다. 씻지 않은 글을 세상에 내놓는다. 고약한 냄새가 난다. 분명 글쓴이에게도 같은 냄새가 나리라. 

일반적으로 그 사람이 쓴 글을 읽어보면 그 사람 내면을 짐작할 수 있다. 글에서 그 사람 성격, 성향, 태도 등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얼마나 정성을 다해 글을 완성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글이 깨끗하면 글쓴이를 신뢰하게 된다. 글이 지저분하면 일단 불신이 먼저 찾아온다. 
글을 한 번에 잘 쓰기는 어렵다. 우선 생각 가는 대로 초안을 작성하고 지속적으로 수정해서 정확한 표현을 찾아가야 한다. 문맥을 다듬고, 오타를 고치고, 띄어쓰기를 고치고 더 나은 단어가 있는지 고민해서 수정한 후 발행해야 한다. 그래야 깨끗하고 읽기 좋은 글이 된다. 명확한 글이 된다. 

보통 자신이 쓴 글은 타인이 읽게 된다. 요즘처럼 누구나 소셜미디어 계정을 한두 개 가지고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자기 자신만큼 중요한 독자는 없다. 스스로 읽어서 만족하지 않으면 타인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깨끗한 글을 쓰겠다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감동이 있는 책은 아니다. 가볍게 한번 읽어볼 만하다.

4월 22, 2017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1

어느날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는 선릉역에서 만나 소주 한잔 하기로 했다. 톨스토이가 자기는 백작 아들이니 오늘은 내가 쏘겠다고 선언하며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었다. 
도스토옙스키가 그렇다면 자기는 한 번도 못 먹어본 참치회를 먹고 싶다고, 가능하면 소주도 몇 잔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톨스토이에게 참치를 쏠 수 있느냐고 짐짓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톨스토이는 며칠 전 <안나 카레니나> 원고료가 입금됐으니 오늘은 기꺼이 자기가 쏘겠다고 선언하며 네이버 블로그에서 찾아보니 선릉역 근처에서는 [페테르부르크 참칫집]이 제일 유명하다고 하면서 그 가게로 가는 게 어떻겠냐고 당당하게 물었다.  
두 사람은 즉시 의견 일치를 선언하며 네이버 블로그에서 찾은 페테르부르크 참칫집으로 향했다. 

페테르부르크 참칫집으로 들어가니 모든 종업원이 동시에 큰소리로 어서 오시라고 소리치며 몇 분인지, 룸이 좋을지 홀이 좋을지 물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떼거지로 큰소리로 인사하는 경우는 생전 처음 본다고 깜짝 놀라며 오늘은 자기 친구 톨스토이가 쏘기로 했기 때문에 모든 결정권은 톨스토이에게 있다며 그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 이어 톨스토이는 조용한 룸이면 좋겠다고 하며 이집에서 가장 맛있는 참치로 달라고 했다. 
방바닥이 파인 룸에 들어가서 도스토옙스키는 이런 방은 처음 본다고 말하며 잘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의아해했다. 톨스토이가 이 방에서는 아무도 자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소주는 빈속에 일잔이 최고라고 말하며 잔을 채웠다. 둘은 잔을 부딪히며 내일은 선거일이고 빨간날이니 오늘 한번 신나게 마셔보자고 했다. 

톨스토이가 우리가 아무리 러시아 사람이라고 하지만 러시아 이름은 너무 어렵다고, 특히 술취한 다음에는 더욱 그렇다고 말하며 취하기 전에 우리 이름은 앞 두 글자만 부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자네는 두 글자만 줄이면 되지만 나는 무려 네 글자를 줄여야 하니 내가 손해라는 생각이 들지만, 실은 내 이름은 도스토예프스키로 네 글자가 아닌 다섯 글자를 줄여야 하지만, 자기가 참치를 얻어 먹는 신세인 만큼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기 이름에 살짝 빌 게이츠 냄새가 난다고 했다. 
여튼 이제 두 사람 이름은 도스와 톨스로 부르기로 합의되었다. 

이윽고 각종 밑반찬과 참치가 들어왔고 참치를 처음 본, 이름에서 빌 게이츠 냄새가 나는 도스는 이게 참치 맞냐고 자기가 생각한 것과 너무 다르다고 의심스럽게 말했다. 톨스는 자기는 백작 아들로서 세상에 좋다는 음식은 다 먹어봐서 안다고 하며 이건 분명 최고급 참치가 맞으니 걱정 말고 많이 먹으라고 말했다. 도스는 평소 네이버 블로그 따윈 믿지 않지만 얻어 먹는 주제에 더 이상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소주 한잔을 원샷하고 참치 한 점을 집어 기름장에 찍은 후 김에 싸서 먹었다. 톨스는 그 모습을 보고 므흣해 하면서 다음에는 백김치에 싸서 한번 먹어보라고 했다. 
톨스가 처음 먹어본 참치 맛이 어떠냐고 물으니 도스는 마치 소고기를 씹는 것 같다고 하며 자기가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고기는 처음 먹어본다고 했다. 톨스가 소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 이름에서 빌 게이츠 냄새가 나는 도스가 자꾸 그러면 이반 데니소비치처럼 감옥에 쳐넣어 버리겠다고 농담을 했다. 

소주가 몇 순배 돌아 얼큰히 취하자 자연스럽게 내일 있을 선거 관련 얘기가 나왔다. 
도스가 자기는 이번에 1번 후보인 라스콜 니코프를 찍을 거라고 말하면서 톨스는 누구를 찍을 것이냐고 물었다. 톨스는 참치 뱃살을 포크로 팍 찍으면서 빨갱이는 절대 안 된다고, 자기는 2번 후보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를 찍을 것이라고 뽐내며 말했다. 
도스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예전에 바람을 핀 적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톨스는 지지 않고 예전에 라스콜 니코프는 도끼로 어떤 노파 대가리를 쳐서 죽이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도스는 그건 자기가 소설에서 꾸며낸 얘기가 와전된 것이라며 실제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었다고 씩씩거렸다. 그는 또 라스콜 니코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사람이며 그가 정권을 잡으면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참치를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톨스가 정치 얘기는 늘 어렵다며 이제 2차를 가자고, 2차는 도스가 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도스는 사실 며칠 전에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원고료가 입금됐으니 2차는 자기가 쏘겠다고 말꼬리를 흐리며 말했다. 이 근처에 자기가 잘 아는 [죄와 벌]이라는 바(bar)가 있다고, 거기서 꼬냑 한잔 하면서 내일 선거 얘기를 계속하자고 했다. 톨스는 그런 바가 다 있냐며 선릉역 주변은 매우 러시아스럽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두 사람은 몸을 휘청거리며 [죄와 벌] 바로 들어갔다. 도스는 왼쪽에 톨스는 오른쪽에 앉았다. 바텐더 언니가 주문을 받으러 오자 도스는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언니가 말하길 자기 이름은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로도바라고 했다. 도스는 이상하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 것 같다고 말하면서 반갑다고 왼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오른쪽에 앉은 톨스가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로도바에게 카페 이름이 어째서 [죄와 벌]이냐고 물었더니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로도바가 술이 죄요, 카드값이 벌이라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톨스는 자기도 소싯적에 글좀 썼는데 거의 노벨문학상감 이름이라고 말했다.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이름에서 빌 게이츠 냄새가 나는 도스가 말하기를, 왼쪽에 앉은 내가 죄요, 오른쪽에 앉은 자네가 벌이구만, 라고 했다.   
메뉴판을 쭉 훑던 도스는 꼬냑을 한 병 주문하고 안주는 서비스로 달라고 했는데 거의 주문과 동시에 꼬냑 한 병과 서비스 안주 김이 나왔다. 도스는 여태 참치를 김에 싸먹고 왔는데 또 김을 주면 어떡하냐고 언니에게 정중하게 불만을 제기하니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로도바가 다른 가게는 대부분 중국산 김을 주는데 우리집은 순수 국산 김이라며 서비스지만 고급 안주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톨스가 끼어들어 우리는 러시아 사람이라서 순수 국산 김이 아니고 순수 외산 김이라고 하며 사실관계를 정확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왼쪽에 앉은 도스가 오른쪽에 앉은 톨스에게 자네도 내일 선거에서 1번 라스콜 니코프를 찍는 게 어떻겠냐고 꼬부라진 혀로 말을 하자, 톨스는 자기는 빨갱이는 절대 안 찍는다고 말했다. 하여 도스가 톨스에게 도대체 빨갱이라는 것이 뭐냐고 물으며 자넨 빨갱이를 본 적이 있는지 어떤 사람이 빨갱이인지 물었다. 톨스가 말하길 1번 후보 라스콜 니코프처럼 사람 대가리를 도끼로 찍어서 죽이는 사람이 바로 빨갱이라고 했다. 도스가 한심하다는 듯이 톨스를 쳐다보며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자기가 소설에서 꾸면낸 얘긴데 자꾸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자네 빼고 누구도 라스콜 니코프가 도끼로 사람 대가리를 찍어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대체 선거 때만 되면 그놈의 빨갱이 얘기를 한다고 이제 그만좀 하라고 말했다. 
똑같은 얘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두 사람을 보던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로도바가 과일 좋은 거 들어왔는데 한번 드셔보겠냐고 도스와 톨스가 만취한 상태임을 이용하여 냅다 물었다. 톨스가 술이 너무 취해서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졸고 있었는데 그 고갯짓을 과일 안주 오더를 컨펌한 것으로 받아 들이고는 커다란 접시에 과일 겨우 몇 개를 담아왔다. 도스가 얼떨결에 과일 조각을 김에 싸서 먹더니 아니 참치 맛이 이상하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로도바가 한심하다는 듯이 도스를 쳐다보며 과일은 김에 싸먹는 게 아니라고 하며 김은 배제시킨 채 단감 조각 한 개를 도스 오빠 입에 넣어 주었다.       
꾸벅 졸던 톨스가 머리를 오른쪽으로 흔들며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로도바에게 지금 몇 시냐고, 근처에 괜찮은 노래방 있냐고 물었다. 언니는 바로 위층이 선릉역에서 가장 유명한 [불러디미르 노래방]이라고 하며 우리 가게 영수증을 제시하면 15% 디스카운트 해준다고 말했다. 그렇게 도스와 톨스 두 사람은 술이 떡이되어 [불러디미르 노래방]으로 올라갔다.

불러디미르 노래방에 도착한 두 사람은 끝도 없는 선거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노래나 신나게 부르자고 하며 도스는 왼손에 톨스는 오른손에 마이크를 잡고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때 갑자기 문이 우당탕 열리더니 어떤 사내가 좌중을 압도하는 모습으로, 회색 넥타이를 머리에 매고 마이크를 와이셔츠 단추 사이에 꽂은 채 나타났다. 마이크는 신기하게도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딱 정중앙에 꽂혀 있었다. 먼저 무례함을 용서해 달라고 말하면서 자기는 옆방 손님인데 이방에서 노래 한 곡 부를 수 있는 영광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어 도스와 톨스 두 사람은 마침 좌우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고 말하며 기꺼이 허락하겠노라고 선언했다. 이에 회색 넥타이를 머리에 매고 마이크를 와이셔츠 단추 사이에 꽂은 남자가 고맙다고 허리 숙여 인사하며 리모콘을 잡으러 가다가 그만 테이블 다리에 다리가 걸려 달이 기울 듯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이때 그의 가슴에 꽂혀 있던 마이크가 명치를 강하게 짓누르는 바람에 엄청난 통증을 느끼자 자기는 다시는 가슴에 마이크를 꽂지 않겠다고 반드시 왼손이나 오른손에 마이크를 잡겠다고 선언하며 거북이 목 감추듯 방을 나가버렸다. 그가 머리에 매고 왔던 회색 넥타이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불러디미르 노래방에서 한바탕 소동이 끝난 후 도스와 톨스는 입가심으로 맥주나 한잔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며 노래방을 나왔다. 이때 이미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도스와 톨스는 선릉역 주변을 기웃거리다 세계맥줏집을 발견하고 거기로 들어갔다. 맥줏집 이름은 신기하게도 [바보 입안]이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았다고,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다고 생각했지만 떡이된 톨스는 그러려니 하고 무시했다. 

톨스는 맥주 두 병과 안주로는 먹태를 시켰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전공한 폴 칼라니티,
그는 문학을 공부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끊임없는 탐구심을 가졌다. 문학으로는 그 질문에 답을 얻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의사가 되어 스탠퍼드대학병원에서 의사의 길을 걷는다. 레지던트 6년차, 졸업 1년여를 남기고 말기 폐암 선고를 받는다. 
6년여 동안 의사로서 환자를 돌보았던 그에게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더군다나 말기 폐암 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삶 속에 있을 때 죽음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인간은 번뇌 그 자체로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한다. 처한 환경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를 얻고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무지하여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폴은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후에 자신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 결국 모든 사람은 그렇게 되지만, 그리고 남은 시간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죽음에 이르기 전에, 내가 곧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정신적, 육체적 고통, 남은 시간까지 얼마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사도 결국은 자연인이다. 
환자의 삶은 곧 죽음을 극복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완치도 있겠지만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완치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스스로…...

스러진 숨결이 자연과 하나 됐다. 숨결을 다시 느낄 수 없겠지만 불어오는 바람 속에 더 따뜻한 숨결이 있다.  
제목만 읽어도 눈물이 난다. 

별이 헤싱헤싱한 흐린 밤에는 읽지 않는 게 좋다. 

오베라는 남자

빨간 벽돌과 녹슨 벽돌이 손잡고 아장아장 걸어와서 담이 되었다. 
쪽빛 담쟁이넝쿨은 비단보다 부드러운 외투가 되었다. 
분홍색 창틀로 곶감색 햇빛이 들어온다. 
거실 바닥은 조개껍질이 널려 있는 모래밭이다. 
할아버지 수염 같은 하얀 연기가 굴뚝을 오른다. 

이런 동네처럼 예쁜 이야기다.   
자음과 모음이 또각또각 걸어와서 소설이 됐다. 

환갑을 바라보는 오베 할아버지는 할머니 곁으로 가기 위해 네 번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번번이 실패한다. 자살하려는 오베 할아버지가 너무 귀엽다. 
오베 할아버지는 마치 동네 이장님 같다. 똥고집 이장님. 할아버지는 무뚝뚝한 듯 성마르다. 
매일 아침 6시15분 전에 일어나서 매일 아침 동네 시찰을 나간다. 문을 잠그고 반드시 세 번 당겨본다. 모든 문은 잠그고 꼭 세 번 당겨본다. 
할아버지는 순돌이아빠 같다. 못 고치는 게 없다. 하여 할아버지는 동네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내가 아이폰만 쓰듯, 할아버지는 사브만 탄다. 할아버지는 원칙주의자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늘, 많이 그리워한다. 
할머니 무덤 묘비를 닦고 분홍색 꽃을 심는다. 시든 꽃은 버리고 다시 분홍색 꽃을 심는다. 
겉은 잿빛 할아버지지만 마음은 분홍빛 어린아이 같다. 세월이 예쁜 마음은 흑백으로 바꾸지 못하나보다.  

이웃집 가족 아이에게 아이패드를 선물하는 할아버지다. 아이패드를 사러 가서 한바탕 난리를 치는 할아버지다. 
아이패드는 잿빛 할아버지와 현대 어린아이를 잇는 상징 같은 것이다. 
할아버지는 할머니한테 가기 전에 이란 출신 이웃집 여자에게 전 재산을 유산으로 남긴다. 할머니가 죽은 뒤 만나는 그런 여자가 아니다. 
할아버지 동네에 새로 이사 온, 남편과 자식 둘이 있고 뱃속에 또 아기가 자라고 있는 이란 사람 여자다. 
이웃에게 유산을 남기는 할아버지, 즉, 사회에 전 재산을 기부한 할아버지다. 

시골 동네 이장님 같고 순돌이아빠 같은 오베 할아버지와 그가 사는 동네 이야기다. 어른을 위한 동화책 같다. 예쁘다. 

오베 할아버지는 <<실천하는 사람과 말만 하는 사람을 구별했다. 오베는 점점 더 말을 줄이고 점점 더 실천을 했다.>>

자유

인류 역사는 자유를 향한 투쟁의 역사다. 우리보다 앞서 산, 자유를 위해 목숨을 던진 분들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 비교적 자유롭게 산다.
원했던 원치 않았던 자유는 우리 시대 최고 덕목이다. 공기가 그렇듯 자유는 우리 가까이 있어서 의식하지 못한다. 비록 우리가 이런 자유를 누린 것이 얼마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자유가 무엇인지 충분히 생각해서 내 자유를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이 명제는 자유를 ‘적극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제는 간단하지만 우리가 사회, 국가, 세계라는 커다란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한 타인 자유를 구속하지 않기란 내리는 비 사이로 피해 다니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타인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려면 그 범위를 인식해야 한다. 범위는 사람마다 다르고 사회마다 다르며 국가마다 다를 것이다.  
범위를 규정하다 보면, 과연 저 명제대로 우리가 자유를 누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류가 이렇게 복잡해진 이상, ‘자유’는 ‘소극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사회, 국가, 지구라는 커다란 시스템 속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극적 의미의 자유라고 해도 반드시 법과 규칙에 따라 자유를 보장하고 제한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곧 자유를 제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가' 자유를 보장할 것인지, 제한할 것인지가 아니고 ‘어떻게’ 자유를 제한하고 보장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이는 특정 개인의 선한 의지에 따라 자유가 보장되고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법과 시스템에 의해 보장되고 제한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현대사회에서 무한 자유를 누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는 행복추구권,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정도에서 만족하는 것이 합리적인 자유라고 생각한다. 
사상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을 모두 포함한다.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있는 관념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상의 자유, 즉, 생각의 자유를 말할 때는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반드시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유 중에 자유, 가장 기본적인 자유지만 지난 십수 년 가까이 우리나라에 이런 자유는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타인 의견이 내 의견과 다르다면, 합리적 의심과 논리적 공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합리적 근거를 가진 논리적 공격이라면 상대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타인 자유를 절대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런 근거 없이 상대를 비난하는 경우, 상대 의견에 무조건 반대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볼 수 있다. 
개별성을 짓밟는 체제는 독재다. 하여 내 편, 네 편 할 것 없이 만인은 사상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하지만 비합리적, 비논리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특정 목적을 가지고 대중을 선동하는 것이며 타인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난 십수 년 가까이 우리는 비합리적, 비논리적 선동을 너무 많이 봤다.  

자유는 어렵다. 내 자유만큼 타인 자유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유는 무섭다. 죄 지은 자의 자유는 구속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 기일

수술실에 들어간 지 다섯 시간이 지났다.
초초함과 불안함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보호자대기실에 지구만 한 큰 징을 때리 듯 전화 벨이 울렸다. 수술실에서 보호자를 찾는 전화였다. 
가슴이 뭍에 올라온 붕어새끼처럼 펄떡이고 있었지만 옆에 있는 다른 동생을 들여보낼 수는 없었다. 큰형인 내가 들어가야 할 터였다.
나는 두꺼운 수술실 문을 밀고 내 발로 걸어 들어갔다. 놀랍게도 수술실 바로 안쪽은 신생아실이었다. 
한 생명은 태어나고 한 생명은 스러져 가고, 강마른 입술을 혀로 훔치고 까끌한 목구멍으로 침을 꿀꺽 삼킨 후 긴 호흡을 하던 차에 날 기다리던 간호사가 손짓했다. 마치 지옥행 열차에 오르라는 듯이.

간호사가 준 위생 가운을 입고 동생이 수술 중인 베드 근처로 이동했다. 동생은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아까 본 신생아 같았다. 동생 머리 쪽에서 발 쪽으로 이동하는 순간 난 시뻘건 뱃속 창자를 보고 말았다. 어릴적 시골에서 민물고기를 낚은 후 배를 딸 때 본 내장 같았다. 수술 칼이 배를 가른 것인지, 바람이 가른 것인지, 암 세포가 가른 것인지, 소주와 담배연기가 가른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10시간 넘도록 첫 수술을 했고 그 후 5년은 잘 살았다. 
몇 달에 한 번씩 총 17차례 항암치료를 했고 중간에 수술을 두어 번 더했다. 대장이 막혀, 전이된 모양이었다, 오른쪽 아랫배에 인공항문을 달았다. 인공항문 때문에 혹여 냄새가 밖으로 샐까봐 고속버스를 타지 못했다. 몸이 힘들어도 200킬로를 직접 운전해서 서울로 왔다. 그가 운전을 한 것인지, 암 세포가 한 것인지, 바람이 한 것인지, 살고자 하는 의지가 한 것인지, 김유신의 말처럼 차가 스스로 병원을 향한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항암주사를 맞았고 주사 독이 퍼지기 전에 서둘러 운전해서 시골로 내려갔다. 그러기를 반복했다. 반복했다. 반복했다. 
끝이 없는 반복, 반복이 어어져 끝나야 좋을지 지속돼야 좋을지 헷갈렸다. 

살 만하다고 느꼈는지, 살고 싶었는지 첫 수술 후 자전거를 열심히 탔다. 비싼 자전거를 탔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죽으라고 운동했다. 그때는 암 환자가 맞나 싶었다. 완치의 축배를 너무 일찍 들었는지 모르겠다. 

세월은 더딘 듯 빠르고 빠른 듯 더디더니 벌써, 아니 이제 3년이 지났다. 세월호가 침몰되기 닷새 전이었다. 
죽기 전 몇 달을 시골 병원에서 사실상 죽은 상태로 지냈다. 그때는 나도 입원 중이었고 퇴원 후에도 거동이 많이 불편해서 동생의 마지막을 볼 수 없었다. 모르긴 해도 모르핀으로 하루하루, 하루하루, 하루하루, 이미 정신이 떠난 육신을 가까스로 숨쉬게 하고 있었을 터였다.  

3일장을 치렀고, 화장했다. 꽃상여는 타지 못했다. 
나는 죽은 날 화장하자 했지만 아버지가 반대했다. 2촌인 내가 1촌인 아버지를 이길 수 없었다. 아버지 말을 들었다. 
가는 길 불편을 난 살피지 못했다. 가는 길이 편해서 또 무엇하랴! 동토에 묻히기는 싫었는지 봄을 앞섶에 맞으며 떠났다. 벚꽃이 노래할 때 떠났다. 

손님이 많이 왔다고 노구의 아버지가 그래도 좋아하셨다. 
당신 묏자리를 아들이 먼저 차지했다고 슬퍼하지 않으셨다. 

우리말, 우리글 바로 쓰기

단언컨대 우리 국민 80% 이상은 우리말, 우리글을 제대로 쓰는 데 관심이 없다. 90% 이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우리말, 우리글을 제대로 쓰겠다는 생각조차 없다. 
우리말, 우리글을 제대로 쓴다는 것은 어법, 띄어쓰기, 맞춤법 등에 맞게 쓴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영어 철자가 틀리면 기겁을 한다. 타인이 작성한 문서에서 틀린 영어 철자를 발견하면 반드시 지적한다.  
하지만 우리말, 우리글을 잘못 쓴 경우에는 대충 넘어간다. 언어 사대주의인지 모르겠다. 

대학까지 마친 성인이 작성한 문서, 다수가 보기를 희망하여 온라인에 발행한 글 중에도 민망한 수준의 글이 많다. 
어떤 글은 마치 구글번역기를 돌린 듯하여 우리말인 듯, 우리말 아닌, 우리말 같은 글도 자주 본다. 한국 사람이 쓴 글이 분명한데 외국인이 쓴 것 같은 글도 자주 본다. 한심한 노릇이다. 
우리말, 우리글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의미가 통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글이나 중요한 문서 같은 경우에는 조금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두 단어 이상은 띄어 쓰는 것이 대원칙이다. 국어사전에 있는 말은 한 단어다. 국어사전에 있는 말은 무조건 붙여 쓰면 되고 없는 말은 무조건 띄어 쓰면 된다. 
예를 들어, ‘우리엄마’는 사전에 없다. 하여 ‘우리 엄마’로 띄어 써야 한다. 너무 쉽다. 이게 기본이다. ‘우리나라’는 사전에 있다. 하여 ‘우리나라’로 붙여 쓴다. 
사전에 없어도 명백히 한 단어라면, 고유명사 같은, 각각 띄어 써야 한다. 띄어쓰기는 복잡하지만 조금만 공부하면 별로 어렵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한 띄어쓰기 두 가지만 소개한다. 
1. 한 두개 : ‘개’는 단위를 나타내는 의존명사다. 하여 앞말과 띄어 써야 한다. 따라서 ‘한두 개’로 쓰는 것이 맞다. 예시에서는 '한 개'는 띄우고 ‘두개'는 붙였다. 당최 이해를 못 하겠다.
2. 홍길동이사님 : 누가 봐도 이 사람 이름은 ‘홍길동'이다. ‘홍길동이사님'이 이름이 아니다. 따라서 ‘홍길동 이사님’으로 띄어 써야 한다. 만약 이름이 ‘홍길동이사’라면 ‘홍길동이사 님’ 또는 ‘홍길동이사 이사님’으로 써야 한다. 

사이시옷 : 간단한 원리만 알면 절대 틀리지 않는다. 
1. 두 단어가 모인 합성어일 것
2. 뒤에 오는 단어가 반드시 된소리(경음)로 발음될 것
3. 한자 + 한자가 아닐 것. 즉, 고유어 + 고유어, 고유어 + 한자어, 한자어 + 고유어 등일 것
4. 위 3항의 예외 딱! 여섯 단어 : '세수하고 차 타', 각 단어 앞말을 따서 이렇게 외우면 된다. 
- 貰房(셋방), 數子(숫자), 回數(횟수), 庫間(곳간), 車間(찻간), 退間(툇간)
위 규칙만 기억하면 절대 틀리지 않는다. 오잇국, 공깃밥, 이야깃거리, 막냇동생, 빗속, 만둣국, 고양잇과…명쾌하다. 
우리 사무실 지하 식당가에 만둣집이 여럿 있는데 딱 한 곳만 ‘만둣집’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고 메뉴판에도 ‘만둣국’이라고 되어 있다. 난 그 집에만 간다. 너무 가탈스러운지 모르겠지만...

외래어(외국어) 표기법도 조금만 공부하면 된다. 큰 틀만 이해하면 충분하다. 외래어도 한글로 적을 때는 우리말이다. 
외래어는 대충 소리 나는 대로 쓰면 되지 무슨 소리냐라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chocolate’ 이라는 단어를 ‘초콜릿’, ‘쪼꼬레뜨’, ‘초컬맅’, ‘초컬레트’ 등으로 각기 다르게 쓴다면 이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가!
외래어 표기법 몇 가지만 소개한다. 
1. manager : ‘매니저’라고 쓰는 것이 맞다. ‘매니져’로 쓰면 안 된다. 
‘ㅈ’, ‘ㅊ’ 다음에는 이중모음을 쓰지 않는다. 이게 원칙이다. ‘매니저’와 ‘매니져’를 발음으로 구별하기 쉽지 않다. ‘ㅈ’과 ‘ㅊ’ 다음에만 그렇다. ‘슈가(sugar)’와 ‘수가’는 분명하게 구별되지만 ‘주(zoo)’와 ‘쥬’, ‘매니저(manager)’와 ‘매니져’는 거의 구별이 안 된다. 따라서 굳이 불편하게 이중모음을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벤져스’, ‘죠스바’, ‘비젼’ ‘텔레비젼’, ‘챤스’ 같은 표기가 내 눈에는 매우 불편하다. 
2. 받침으로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 사용한다. 단순하게 쓰라는 얘기다. 
good : ‘굳’이 아니고 ‘굿’이다.
market : ‘마켙’이 아니고 ‘마켓’이다. 
kick : ‘킼’이 아니고 ‘킥’이다. 
‘굳이어타이어’, ‘에쓰오일’ 같은 회사가 난 매우 불편하다. 

우리말, 우리글을 정확하게 쓰려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의식적 노력만 있어도 70% 이상은 제대로 쓸 수 있다.  영어사전은 수시로 찾아 보면서 우리말 사전은 1년에 몇 번이나 보는지 돌이켜 볼 일이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띄어쓰기나, 맞춤법에 대한 책은 아니다. 우리말, 우리글을 제대로 써야 한다는 의식이 필요한 순간, 이 책은 도움이 될 것이다.  

주름 하나 없는 사각거리는 하얀 와이셔츠를 입었을 때 느끼는 기분, 그런 기분이 들도록 우리말, 우리글을 써야한다고 늘 생각한다.
여러 번 고쳤는데 위 글 중에 틀린 띄어쓰기, 틀린 맞춤법이 있을까 걱정이다.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는, 노자와 그밖의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노자와 그의 사상은 특별하다. 
노자 사상의 핵심은 '관계론적 세계관'이다. 
모든 것은 대립면이 있다. 하여 대립면의 공존을 인식하고 상호 긴장, 보완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고귀함은 비천함을 뿌리로 하고 높음은 낮음을 기초로 한다. 늘 자신과 반대에 있는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노자는 개인의 존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개별 개인이 내재적 사고를 통해서 본인의 존엄함을 깨닫고 존엄함을 토대로 사유해야 사회 전체가 건강해진다.
사회에서, 국가에서 특정 이념을 강요하면 개인이 존엄함을 가질 수 없고 하여 사회, 국가가 건강하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사회나 국가보다 개인이 우선이라는 의미다. 이런 그의 사상으로 볼 때 틀림없이 노자는 진보주의자였던 듯하다. 

오늘 아침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이승만, 박정희 묘역을 참배한 모양이다.
개인 문재인과 대통령 후보 문재인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문재인 후보가 여러 참모 의견을 수렴하고 고심해서 결정했겠지만 이승만, 박정희 묘역 참배 자체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국민, 사상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국민도 포용하려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탄핵과 구속이 법에 따른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탄핵 후, 구속 후 맘이 편치 않았다.
법에 따르지 않고 사욕이 우선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 한 것이며, 그런 권력자는 국민의 힘으로 끌어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불행한 역사가 기록되어 맘이 불편했다. 
일부 품위 없는 그녀 지지자들의 행동을 뉴스로 접하면서 한심하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이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이 대립면의 공존을 인식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회, 이것이 노자가 그린 유토피아다. 
본질과 자아는 부정되어야 한다. 그래야 대립면, 즉 나와 다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우주에는 은하가 약 1천억 개 있고 각 은하마다 약 1천억 개 별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우주의 티끌 하나에 불과하다. 
티끌 속 티끌에서 우리는 아옹다옹 싸우고 있다. 

수인

네모난 벽 속에 사람이 갇혀있다.

囚 : 가둘 수, 죄인 수
囚人(수인) : 죄인, 감옥에 갇힌 사람

신영복 선생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난 이 囚人이란 단어를 처음으로 눈여겨 봤다.
신영복 선생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1, 2심에서 사형,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받았고 약 20년 수감생활 후 전향서를 쓰고 출소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수감생활 중 신 선생이 지인에게 쓴 편지를 엮은 책이다. 비록 제목이 이상하고 마음에 안 들지만 그의 20년 수감생활이 아련히 눈 앞에 펼쳐진다. 마치 내가 수감생활을 하는 듯 착각을 일으킨다. 
수감생활 중에 쓴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뜻하고 맑은 글이다. 그래서 囚人이라는 단어는 원래 의미와 완전히 다른, 죄인이라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기운을 내게 준다.

漢字는 참 신기하다. 사방 네모 속에 사람을 넣고 ‘가두다’, ‘죄인’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다니, 실로 妙(묘)하다. 妙(묘할 묘)라는 한자도 참 묘하다.
女(여자 여)와 少(적을 소)가 만나서 ‘묘하다’는 의미가 된다. 여자 마음은 알 수가 없다고 하는데 어린 여자 마음은 얼마나 더 알 수 없을까! 그래서 묘하다. 

그녀가 囚人으로 살면서 이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여러 번 읽었으면 좋겠다.
죗값을 다 치를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이제 시작이기 때문이다.   

통일혁명당 사건은 박정희 정권 때 일어난 사건이다. 

탄핵에 부쳐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있다면 그 뿌리는 갈등이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갈등은 생각이 다름에서 생긴다. 만인의 생각이 같으면 갈등은 없다. 만인이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다.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 한다면 갈등이 있을 리 없다. 만인의 표현이 같을 수 없다. 하여 다양한 의견 충돌은 필연적이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갈등을 통해 상호 의견을 수렴하는 나라, 상대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다. 갈등이 없는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만인의 생각이 자유롭게 표현되지 못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만인이 자유롭게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는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갈등은 특정 결과로 반드시 수렴되기 때문이다. 내 의견이 중요한 만큼 타인 의견도 존중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고 그런 자세로 토론에 임하면 된다. 

오늘날 ‘그녀'로 인한 우리 사회의 ‘갈등'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생각이 다른데 그냥 아무 의견도 없이 가만히 있어야 한단 말인가! 지난 대선에서 그녀는 승리했다. 이번 탄핵심판에서 그녀는 패배했다. 영원한 권력은 없고 영원한 승리는 없다. 다양한 생각과 갈등이 그녀의 대선 승리와 또 정반대로 탄핵심판 인용으로 수렴됐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계급이 없는 사회지만, 상상의 계급은 존재한다. 그녀는 자신을 왕으로 생각한다. 국가를 자신 소유로 생각한다. 탄핵이 인용된 지금도 그녀는 자신이 국가의 주인이라고 확고하게 믿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주인이기 때문에 타협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논리적이지 않다.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토론할 수가 없다. 토론할 수 없어서 설득할 수가 없다. 즉, 말과 생각이 통하지 않는다. 

사람을 함부로 죽인 박정희, 전두환 등에 비한다면 그녀는 가장 나쁜 대통령은 아니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는 대통령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온전한 한 문장으로 스스로 말할 능력이 없는 대통령이었다. 그녀가 딱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나는 이 나라의 왕이고 주인이다.’라는 것이다. 
그녀는 생각 없는 대통령이었다. 이것이 그녀의 유일한 잘못이다. 민주사회에서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 갈등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만인이 방관하더라도 딱 한 사람, 대통령은 방관해서는 안 된다. 생각이 있으면 방관할 수가 없다. 생각이 없기 때문에 방관한 것이다. 그녀는 세월호사건을 방관했고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모든 책무를 방관했다. 문제는 방관했다는 사실조차 스스로 인지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생각 많은 시민이 생각 없는 대통령을 쫓아낸 것이다. 

만인의 생각이 수렴되는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 정상인데, 너무 생각이 없어서 갈등이 생기는 희한한 이론을 창조한 그녀는, 자신 소유의 국가에서 이제 사라지게 됐다.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거대한 관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시민의 승리, 더 정확히 말해서 '시민 생각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사유와 사유가 충돌하면서 지속적으로 갈등이 생기지만 현명하게 수렴할 줄 아는 나라, 수렴된 결과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줄 아는 나라, 만인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나라, 만인이 만인을 생각해 주는 나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이 다음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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