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학생이 된 아들 녀석은 정리정돈 안 하고 어지럽히기 대마왕이다. 양말은 저쪽에 팬티는 이쪽에. 책상 위는 과자 봉지, 책, 노트, 볼펜 등으로 늘 엉망이다. 사실 대마왕까지는 아니고 그 또래에 다 그런 정도. 하여튼.
녀석에게 자전거를 한 대 사주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자전거는 늘 있었지만 해가 갈수록 자전거에 대한 욕심이 커져 갔고 좋은 자전거로 기변을 노리고 있었다. 좋은 자전거란 곧 비싼 자전거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아들 놈 친구 아빠가 마침 삼천리자전거 본사에 근무하는 분이라서 기존에 타던 자전거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었다. 집사람은 다시 그분에게 부탁하자고 했지만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꺼림칙하던 참이었다. 또한 녀석이 원하는, 사고 싶은 자전거는 따로 있었다.
나는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랐는데 자전거로 유명한 동네였다. 동네방네 자전거 없는 집이 없고 등하교 시간 아스팔트에는 마치 피난민 같은 자전거 행렬로 가득했다. 아마 전국에서 가장 먼저 자전거 도로가 생긴 동네일 것이다. 지금은 자전거박물관도 있다. 그래서 자전거에 익숙하지만 나는 자전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 자전거를 한 번도 가진 적 없다.
녀석에게 자전거를 사주기로 하고 어떤 자전거를 원하는지 물었더니 글쎄 인터넷 쇼핑몰에서 몇 가지 고른 후 링크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보니까 팔십만 원이 넘는 것도 있고 제일 싼 게, 그러니까 자기 딴에 제일 후순위였던, 오십만 원 정도였다. 물론 엄청나게 비싼 자전거가 많은 걸 안다. 백만 원이 훌쩍 넘는 자전거가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제 갓 중학생이 된 녀석에게 백만 원 가까운 자전거를 사주기는 힘들었다.
그러던 차에 녀석이 휴대전화 액정을 깨먹었다. 벌써 몇 번짼지. 수리비가 15만 원 정도 나왔는데 너무 화가 나서, 액정 깨진 것 자체보다 조심성 없는 것 때문에 화가 났다, 벌로 올해 자전거 사주기로 한 것은 취소라고 말했다. 녀석은 별말은 없었지만 대단히 실망하는 눈치였다.
며칠이 지나 하도 마음에 걸려서 자전거를 사주겠다고 하고 제일 후순위인 50만 원 정도하는 자전거를 주문했다. 그 자전거가 주문 삼일만인 그제 집으로 배달이 됐다. 요즘은 자전거가 완전 조립 상태로 배송이 된다. 집에서 간단하게 페달만 달면 바로 탈 수 있도록.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녀석이 거실 바닥에 자전거를 거꾸로 눕혀 두고 여기저기 물수건으로 닦고 있었다. 세상에 세상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천방지축 중1이 자전거를 닦고 있다니. 사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하고 모처럼 외식을 하고 집에 왔는데 녀석이 크로스백을 주섬주섬 하더니 잠시 동네 공원에 갔다 오겠다고 한다. 크로스백을 열어 보니 온갖 공구가 들어 있었다.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지만 딴에 스스로 정비를 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현관문 앞에 이전에 타던 자전거가 아직 있는데 그걸 보면서 녀석이 껄껄 웃는다. 마치 이런 똥 같은 것을 어떻게 타고 다녔는지 한심하다는 듯이 말이다.
생각해 보니, 지금 내가 쓰는 맥북 프로는 이백만 원짜리고, 아이폰은 백만 원 언저리에 샀다. 타는 차는 약 6년 전에 이천오백만 원을 주고 산 것이다. 아이에게 그 정도 자전거를 사주지 않을 명분은 내게 없었다.
아이 휴대폰을 구매하면서 분실, 파손보험을 들었는데 보험료가 입금이 되어서 사실상 액정 수리비는 별로 들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아이한테 하지 않았다.
50만 원짜리 자전거를 주문하고 나서 애하고 굳게 약속을 했다.
“엄마한테는 30만 원에 샀다고 말해.”
내 막냇동생은 6년간 암 투병 끝에 2014년에 죽었는데, 암 수술 후 운동할 요량으로 자전거를 탔었다.
한 이백만 원 정도 하는 자전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말 열심히 탔다. 아침 먹고 자전거, 점심 먹고 자전거, 저녁 먹고 자전거였다. 자전거 동호회도 들었고 들로 산으로 매일 자전거 타는 게 일이었다. 매일 그렇게 3, 4년을 탔다. 살아보려고 그랬던 것 같다. 죽기 싫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던 동생은 결국 재발 및 전이로 죽었다.
죽기 몇 달 전 동생이 카톡으로 자기가 타던 자전거 사진 여러 장을 보내왔다. 휴대폰 카메라로 곱게도 찍어 보냈다. 앞 사진, 옆 사진, 뒷 사진 등 골고루 꼼꼼하게 찍어 보냈다. 어디서 찾았는지 말끔한 곳을 배경으로 바윗등 같은 곳 위에 자전거를 얹어 두고 찍은 사진이었다. 타던 자전거를 중고나라 같은 데 팔아달라는 것이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 뭔지 그때 깨달았다. 동생은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도저히 그 자전거를 중고나라에 올릴 수 없었다.
카톡에 이런 메시지가 함께 있었다.
“형 미안해. 자전거 판 돈으로 형 용돈이나 해."
동생이 죽은 후 카카오 스토리를 살펴봤더니 사진과 글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하늘로 가기 전에 미리 다 지운 것이다. 왜 지웠을까 궁금했지만 때가 늦어 물어볼 수 없었다. 그 고독했던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 현생을 모조리 지우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을 것이다.
동생 카스에는 다만 딱 한 장 사진이 남아 있었다. 프로필 사진이었다.
동부간선도로와 나란히 중랑천변으로 자전거 도로가 있는데 출퇴근길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사람들을 보면서 아이러니 하게도 저 사람들은 건강할까? 뭐 때문에 저렇게 열심히 자전거를 탈까 생각하곤 한다.
자전거에 희망을 거는 사람들, 그게 무엇이든 희망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동생이 타던 자전거를 할아버지, 할머니 옆에서 자고 있는 동생 옆에 뒀어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한다. 지금 그 자전거는 어찌 됐는지 모르겠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