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 2017

눈먼 자들의 도시

사람 욕심은 끝이 없어서 마음속에 늘 독버섯처럼 자리 잡고 있다. 모든 인간이 성인군자처럼 살 수도 없고 그럴 필요 역시 없겠지만, 인간이라면 어떤 가치와 어떤 윤리의식을 가지고 살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답변을 마음속에 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는 어디에 눈이 멀었나, 생각해 보니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저 그런 평범한 인생을 살아서 눈이 멀 정도로 뭘 해본 적도 없다. 또 미친듯 눈이 멀어서 어떤 결과물을 완성한 것 역시 없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나쁜 의미만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인생에서 눈 한번 멀어보지 못했다면 밋밋한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소위 눈이 멀었다라는 것은 물리적인 시각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대부분은 오직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보려고 하기 때문에 모두 눈먼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가 보는 세상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내가 믿는 진실은 정말 진실일까? 
눈먼 자들 중에 눈먼 자.

사리사욕에 눈먼 사람, 돈에 눈먼 사람부터 온갖 잡다한 것에 눈먼 사람 투성이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눈이 멀었다고 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떠오르지만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도 분명 있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어떤 것을 보지 못한다는 뜻도 있지만 반대로 어떤 것만 본다는 의미도 있다. 
정말 아무것도 보지 못해서 눈먼 자, 어떤 특정한 것만 봐서 눈먼 자.
눈이 멀어서 우리가 이만큼 살 수 있었을까? 눈이 멀어서 이만큼 각박해진 걸까? 


만일 이것이 실인증이라면, 환자는 지금 그가 늘 보던 것을 보고 있을 것이다. 즉 시력 감소는 없는 것이고, 다만 의자를 보는데도 뇌가 의자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시신경에 오는 빛의 자극에는 계속 정확하게 반응을 하지만, 자신이 아는 것을 알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며, 나아가서 그것을 표현할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어떤 남자가 차 안에서 신호 대기 중에 느닷없이 눈이 멀게 된다. 그는 너무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는데 어떤 사람이 다가와 그를 대신해 차를 몰고 집까지 데려다 준다. 이어 그의 아내가 눈이 멀고 대신 운전해 준 그 남자도 눈이 먼다. 또 처음 눈이 먼 자가 찾아간 안과 의사와 당시 안과에 대기 중이던 모든 사람이 눈이 먼다. 마치 전염병처럼 눈먼 사람이 늘어가고……

이윽고 남자가 말했다, 난 눈이 멀었어, 앞이 안 보여. 여자는 다시 짜증이 났다. 말도 안 되는 장난 좀 그만 해요, 농담할 게 따로 있지. 나도 농담이면 좋겠어, 하지만 정말로 눈이 멀었단 말이야, 아무것도 안 보여. …… 여기요, 불도 켜놨잖아요. 나도 당신이 거기 있다는 건 알아, 소리도 들려, 만질 수도 있어, …… 하지만 안 보인단 말이야. 여자는 울면서 남편에게 매달렸다. 

결국 정부 당국에서는 눈먼 자와 보균자를 정신병원에 격리시키고 만다. 눈먼 자만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들은 그 안에서 갖은 고초를 겪게되고, 인간 이하의 삶을 살게 된다. 눈먼 자끼리 싸우고 죽이고 빼앗고……눈먼 자들 중에 다시 눈먼 자가 생긴다. 
이들 중 오직 눈멀지 않은 자가 있었는데 바로 안과 의사 아내다. 이야기는 안과 의사 아내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의사 아내는 그곳에 도착한 뒤 처음으로, 자신이 현미경을 통해 그녀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인간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그런 행동이 경멸스럽고 외설적으로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수 없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을 볼 권리가 없어, 그녀는 생각했다. 

눈먼 자들이 수용된 정신병원은 그야말로 엉망이다. 이는 우리 사회를 축소해서 보여주는 듯하다. 무질서와 무법천지.
인간의 가치는 무엇인가? 인간이 지켜야할 윤리는 무엇인가?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연대의식이 말살되고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사는 세상을 통해 현재 위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저 사람은 누구요.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가 대답했다, 의사입니다, 안과 의사죠. 택시 운전사가 말을 받았다. 그거 재미있군, 아무것도 못해 주는 의사라, 우린 정말 운도 없지. 아무데도 데려다주지 못하는 택시 운전사는 뭐가 다른데요, 검은 색안경을 쓴 여자가 맞받아 빈정거렸다. 

눈먼 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가 안과 의사라니, 그가 택시 운전사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으랴! 눈이 멀면, 즉 세상을 오롯이 볼 수 없는 사람은 어쩌면 사회에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수치심이 우리에게 먹을 걸 주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누가 한 말인지 몰라도, 그 말은 맞소, 늘 수치심이 없어 배를 채울 수 있었던 자들이 있었소, 하지만 우리는 우리 분수에 맞지 않은 마지막 한 조각 존엄성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소, 이제 우리에게도 마땅히 우리 것이어야 하는 것을 찾기 위해 싸울 능력 정도는 있다는 것을 보여줍시다. 

이곳에서, 한 사람은 모든 사람을 위해야 하고 모든 사람은 한 사람을 위해야 마땅한 이곳에서, 우리는 강한 사람들이 잔인하게도 약한 사람들 입에 들어갈 빵을 빼앗아가는 것을 목격했다. 

눈먼 자들은 수치심을 모른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 어떤 수치심도 감내한다. 어려울수록 연대해서 스스로를 통제하며 공익을 위해 노력해야 하건만, 짐승 같은 정신병원 속 눈먼 사람들은 저 하나 살기 바쁘다. 

그들은 정신병원이라고 정의된 곳에서 살았다. 사실, 그 합리적인 미로에서 사는 것과 도시라는 미쳐버린 미로로 나아가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더군다나 그들에게는 안내하는 손길이나 개줄도 없다. 도시의 미로에서는 기억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이미 정신병원일지도 모른다. 
합리적 연대와 철학적 사유가 필요하고 삶을 돌아보고 가치를 판단할 여유가 필요하다. 타인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겸양을 쌓아야 한다. 눈먼 자에게 눈먼 자로 맞서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다. 눈먼 자가 있다면 따뜻하게 손을 잡아줄 필요가 있고, 눈먼 자는 또다른 눈먼 자를 안아 줄 필요가 있다. 

안과 의사 아내가 한 말을 기억하자.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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