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고속도로 망상IC를 빠져 나와 시내 쪽으로 우회전해서 십 분 정도 차를 달리면 묵호항이 나온다. 묵호항에는 생선 냄새와 바다 냄새가 합쳐진 비릿한 냄새가 나는데 나는 그 냄새가 좋다. 메슥거리는 비린내를 한참 덜어낸, 기분 좋은 비릿함이다. 들큼하고 달곰한 것에 사람 냄새까지 더해지니 마치 품속처럼 아늑하다
괴괴한 밤에 바닷가로 나가면 수평선 멀리 엄청난 빛을 뿜는 배가 복달거리며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모두 오징어잡이 배다. 마음 같아선 그 배에 한번 타보고 싶기도 하지만 태워 줄 리 만무하다. 만선을 위해 새벽잠 설치며 파도에 맞서 고기 잡는 이들의 팥죽 같은 땀이 멀리서도 느껴진다.
자음 ‘ㅅ’ 같은 테트라포드가 도열해 있는 방파제 끝에는 붉은색 등대가 우두머리처럼 우뚝 서있다. 등대 맨 꼭대기에는 갈매기떼가 망원경도 없이 동해바다를 시찰하고 있다. 거대한 테트라포드는 ‘쏴아쏴아’하는 파도 소리가 방파제에 부딪혀 자음 ‘ㅅ’만 남은 것 같은 모양새다. 켜켜이 쌓여 있는 테트라포드는 무소불위의 권력인 듯 보이고 그 벽면을 따라 개미만큼 작은 게들이 행군을 하기도 한다. 이 게들에게 테트라포드는 만리장성과 다름없다. 이놈들이 테트라포드를 보고 훈민정음을 깨닫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저 거대하고 많은 테트라포드를 어떻게 옮겼고 저렇게 마침맞게 쌓았는지 참 모를 일이다.
방파제 옆을 돌면 바닷가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바짓단을 걷고 찬물에 발을 담그면 노곤했던 몸이 그 선득함에 화들짝 놀라 천년 묵은 피로도 히뜩 사라진다. 욕심에 조금 깊은 곳으로 발을 내딛다 보면 어느새 파도가 무릎까지 차올라 빨랫감이 늘어난다.
묵호항 바로 옆에는 횟감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여럿 모여 있는데 그 동네 사람들은 그곳을 어판장이라고 한다. 어판장 한쪽에는 아주머니들이 쪼그리고 앉아서 어판장에서 산 횟감을 즉석에서 먹기 좋게 떠준다. 그런 냄새가 모여서 비릿한 추억이 된다. 바다 냄새, 사람 냄새, 인생 냄새. 냄새만으로 이미 자연산 회를 한 접시 먹은 듯하다.
어판장 앞에는 건어물을 파는 노점상이 여럿 있고, 그 와중에 호박엿을 파는, 틈새시장을 노리는 아저씨도 있다. 가윗소리가 어찌나 경쾌한지 안 사곤 못 배긴다. 울릉도 호박엿이라고 하는데 굳이 브랜드 마케팅을 안 해도 맛이 좋다. 그 동네 사람들이 ‘피데기’라고 하는 반건조오징어는 그 맛이 참 기막히다. 딱딱하지 않아서 씹기 편할 뿐더러 성냥개비 같은 초고추장을 살짝 찍어 입에 넣으면 동해바다를 통째로 삼킨 듯하다.
배가 정박해 있는 묵호항 근처를 어정버정 하다 보면 낚시를 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낮술에 불콰해진 얼굴로 비트적비트적 걸으면서 뽕짝을 한가락 하는 아저씨를 만나기도 한다. 어렵사리 고기가 낚이는데 대부분 작은 고기다. 보고 있으면 세월을 낚았다는 강태공 생각도 나고 인생이 뭐 별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묵호항 건너편에 조그만 시장이 있고 시장 어귀에서 건어물을 파는 할머니가 계신다. 처가에 갈 때면 그 앞을 지나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유찬이 왔나!” 하시면서 우리 아들에게 만 원짜리를 덥석 쥐어 주신다. 일년에 한두 번 겨우 방문하는데 어떻게 아들 놈 이름을 기억하시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오만 원권이 생기면서 아들 수입이 다섯 배로 늘었다. 누구에게 감사할지 몰라 난 우선 조폐공사 사장님을 떠올렸다. 그 돈 모아서 녀석은 자전거 사는 데 보탰고 컴퓨터 사는 데 보탰다.
시장 반대편 끝에 은성목욕탕이라고 있다. 목욕탕 입구 옆에 마치 붙박이장 같은 개집이 있고 그 안에 사나운 개가 있는데 내가 개띠인 걸 아는지 나를 보면 엄청나게 짖어댄다. 그때마다 난 “네가 ‘개’라서 여태 살아 있는 거야. ‘게’였다면 넌 벌써 내 밥이 됐다.” 라고 말하며 더 짖기 전에 조심스레 목욕탕 안으로 들어간다.
목욕탕 안에는 열탕, 온탕, 냉탕이 각 하나씩 있고 그 유명하다는 핀란드식 증기 사우나도 있다. 한켠에 신기한 물건이 있는데 이른바 자동 때밀이다. 둥근 접시 모양에다 까칠한 때수건을 입힌, 장영실도 울고 갈 세계적인 발명품이다. 대야에 찬물 한가득 담아서 접시에 흩뿌린 후 등을 기대면 접시가 돌면서 시원하게 때를 민다. 대중화가 안 된 걸 보면 그리 성공적인 발명품은 아닌 것 같다. 하여 장영실은 의문의 일 패를 벗어났다.
그 시골 작은 항구도 주말이나 여름 휴가철에는 제법 차가 막힌다. 검정색 비닐 봉다리에 든, 갓 손질한 횟감을 바투 잡고서 차에 오르는 사람들 표정을 보면 행복이 묻어난다. 얼마 전에 가보니 그 방파제 옆에 구식 횟집을 정리하고 깔끔한 새 건물을 올렸는데 왠지 어색하고 낯선 풍경이었다. 다림질한 듯 말쑥한 횟집이 시골 항구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나만의 욕심일까!
이러구러 하루가 지나는 묵호항에는 늘 ‘오도독 오도독’ 회 씹는 소리가 나는 것 같다. 께느른한 몸을 이끌어 서울로 돌아오면 묵호항 냄새가 며칠 동안 떠나지 않는다. 여느 시골처럼 묵호항에도 젊은이는 보이지 않고 노인들뿐인데 내 머릿속 그 풍경이 얼마나 견딜지 모르겠다. 묵호항에서 태어난 아내와 99년에 결혼했고 매년 한두 번 갔으니 아마도 삼사십 번은 간 모양이다.
세상 싫을 땐 거기 가서 혼자 아무 생각 없이 며칠 묵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