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벽돌 공장이 된 지 오래다. 모두가 똑같이 움직이고 한 방향으로만 간다. 누구도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의사와 상관없이 갈 길은 정해져있다. 혹여 다른 길을 가려던 참이면 난데없이 비난이 쏟아지고 만다.
무색무취, 몰개성
학교는 사람을 찍어 낸다. 똑같은 책을 읽고 똑같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정답’이 아닌 것은 용납이 안 된다. 가장 벽돌 같은 학생이 우등생이다. 벽돌에 본인 감정, 취향, 혼을 실으면 탈락이다.
회사도 다르지 않다. 회사가 제품을 찍어 내는지 직원을 찍어 내는지 모를 일이고, 직원이 부품처럼 켜켜이 쌓여 회사가 돌아간다. 우리 모두는 사회라는 커다란 기계 속 한낱 부품이 되어 버렸다.
그때 나는 비로소 세계의 부품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세계의 정상적인 부품으로서의 내가 바로 이날 확실히 탄생한 것이다.
‘천편일률적', 이처럼 무서운 말이 또 없다. 생각도, 가치관도, 외모도, 하는 일도, 먹는 음식도 모두 똑같다. 이력서도, 모집 요강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길에서 한치도 엇나가서는 안 된다. 스스로 길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회색 동선만 끝없이 반복된다. 그래야지 성공한다.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망하는 첩경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매뉴얼대로 살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콩나물시루에 처박힌 인생이다. 톡톡 뽑혀서 사용되는 부품이다. 부품이 고장나면 바로 다른 부품으로 교체된다. 시루에서 뽑기만 하면 된다. 고장난 부품은 얄짤없이 버려진다.
그러는 사이 세월은 힁허케 지나간다.
획일적, 일방적 가치관만 살아 남는다. 내 생각을 말하기 어렵다. 대중 생각과 거리가 있다면 그 비난을 감당하기 어렵다. 이 생각과 저 생각이 부딪혀 또다른 생각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부딪힐 생각은 꿈도 못꾼다. 남 생각이 곧 내 생각이다. 하여 생각할 필요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같이 웃어주고 같이 화내주면 동질감을 느낀다. 아무 의미없는 무색투명한 동질감.
같은 일로 화를 내면 모든 점원이 기쁜 표정을 짓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직후의 일이었다. 점장이 버럭 화를 내거나 야간조의 아무개가 농땡이를 부리거나 해서 분노가 치밀 때 협조하면, 불가사의한 연대감이 생기고 모두 내 분노를 기뻐해준다.
기계 속 부품과 같은 생활에 익숙해져서 이제 스스로 기계가 되지 못한다. 기계 속을 벗어나면 어지럽고 답답하여 어쩔 줄 모른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있다고 해도 타인의 비난을 감수할 만큼 명분을 찾기 어렵다.
빨리 편의점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편의점에서는 일하는 멤버의 일원이라는 게 무엇보다 중요시되고, 이렇게 복잡하지도 않다. 성별도 나이도 국적도 관계없이, 같은 제복을 몸에 걸치면 모두 ‘점원’이라는 균등한 존재다.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자신을 위한 삶인가? 사회를 위한 삶인가?
부품처럼 살다가 고장나고 녹슬면 누가 책임져 주나?
‘나’는 존재하는가?
존재하는 ‘나’는 ‘나’인가, ‘부품'인가?
“이것 봐요. 무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에게 프라이버시 따위는 없습니다. 모두 얼마든지 흙발로 밀고 들어와요. 결혼해서 아이를 낳거나 사냥하러 가서 돈을 벌어 오거나, 둘 중 하나의 형태로 무리에 기여하지 않는 인간은 이단자예요. 그래서 무리에 속한 놈들은 얼마든지 간섭하죠.”
언젠가 내가 편의점 판매대 위에 진열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진열되면 다행이다. 1+1 제품의 뒤쪽 1이 되거나 아예 폐기처분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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