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 2017

자기 앞의 생

기뻐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다. 슬픔 속에도 행복이 있다. 작가 에밀 아자르는 그래서 자살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슬픈 행복, 때문에 

행복은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앞에 있는 것이다. 머릿속 행복은 내 것이 아니고 그저 욕심일 뿐이다. 머릿속 행복은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일 뿐이다. 사람마다 서 있는 위치가 달라서 행복에 대한 정의는 즉, 사람마다 다른 것이다. 앞에 보이는 것이 행복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내 것이 아니다. 억지로 머릿속으로 행복을 찾으려 마라.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지, 눈 앞에 보이지도 않는 다른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여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몸이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삶은 몸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피비린내 투성이라도, 남들 눈에 하찮게 보이더라도 앞에 있는 삶이 ‘내’ 삶이다.  

로자 아줌마 집에 있는 아이들은 거의가 다 창녀의 아이들이었고, 돈을 벌기 위해 지방에 가서 몇 달씩 머물러야 했던 그녀들이 떠나기 전후에 자기 아이들을 보러 오곤 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불편도 끼치지 않는데 왜 창녀로 등록된 여자들이 자녀를 키울 수 없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구나 마음속에 늑대와 양을 동시에 키우고 있다. 늑대는 타인 영혼을 물어뜯기도 하고, 양은 가난한 이에게 털을 나누어 주기도 한다. 세상에 태어나 숨을 쉬기 시작하면서 영혼이라는 구세주를 얻었는데 흑인이든 백인이든, 가난한 자든 부유한 자든 모두 똑같은 영혼을 가지고 삶을 시작한다. 영혼은 생명의 다른 이름이고, 최소한의 명예다. 살아가면서 늑대 때문에 또 양 때문에 영혼의 색깔은 변한다. 어떤 영혼은 투명하고, 어떤 영혼은 걸레처럼 더러워진다. 자기 삶에 주인이 되지 못하고 타인에게 속박되고 구속된다. 영혼은 연탄재처럼 스러지고 서서히 파멸되어 간다. 마른 낙엽처럼 피가 흐르지도 않는 혈관을 드러내 놓고 산산이 부서진다.  

내 생각에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더 펀안하게 잠을 자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남의 일에 아랑곳하지 않으니까.

잘 벼린 칼로 손을 그었다. 살 틈이 벌어지고 잉크 같은 피가 흘렀다. 피는 투명했고 끈적였다. 피는 소리 없이 울었다. 피는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 피는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절박함이 애원한다. 스스로 죽지 못하는 고통, 더러워진 영혼이라고 해도 그 무게는 다르지 않다. 

로자 아줌마는 침대 밑에 히틀러의 대형 사진을 두고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껴지거나 어떤 성인에게 의지해야 좋을지 모를 때면 그 초상화를 꺼내서 들여다보았는데, 그러면 큰 걱정거리 하나는 덜었다 싶은 생각에 기분이 한결 나아지고 근심 걱정까지 금세 잊을 수가 있다고 했다. 

땅바닥에 누워서 눈을 감고 죽는 연습을 해봤지만, 시멘트 바닥이 너무 차가워 병에 걸릴까봐 겁이 났다. 나는 마약 같은 너절한 것을 즐기는 녀석들을 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생의 엉덩어를 핥아대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생을 미화할 생각, 생을 상대할 생각도 없다.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 

죽는 것이 좋을지 사는 것이 좋을지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쉽게 죽지도 못한다. 행복은 삶에서 오지만 삶에서 행복이 오지는 않는다. 삶이 고통보다 처절할 때가 더 많다. 세상과 단절되어 사는 삶은 위태롭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삶은 공허하다. 비록 거적대기 같은 삶일지라도 목숨은 가치 있는 것이다. 내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지내고 걱정하고 고민하고 울어주는 사람만 있으면 행복한 것이니까.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잘 들어라, 모모야. 나는 병원에 진짜 가고 싶지 않아. 그 사람들은 나를 고문할 거야.”
“로자 아줌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프랑스에서는 사람을 고문하지 않아요. 여긴 알제리가 아니라구요.”
“모모야, 그들은 나를 억지로 살려놓으려 할 거다. 병원이란 데가 원래 늘 그 모양이야. 법이 그러니까. 나는 필요 이상 살고 싶지는 않다. 이제 더 살 필요가 없어.”

부조리가 천지에 널렸지만 탓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영혼이 마르기 전에 죽을 수는 없는 것이니까. 사람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영혼에 값을 매긴다. 영혼을 가지고 거래를 한다. 영혼을 짓밟는다. 더러워져도 살아야 한다. 행복은 삶에서 오는 것이니까.  

로자 아줌마는 동물들의 세계가 인간 세계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동물들에게는 자연의 법칙이 있기 때문이라나. 특히 암사자의 세계가 그러하단다. …… 암사자들은 새끼를 위해서라면 절대 물러서지 않고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데, 그것이 정글의 법칙이며, 암사자가 새끼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암사자를 신뢰하지 않을 거라고 얘기했다. 

삶은 미래다. 그래서 자기 ‘앞’의 생이다. 미래가 없는 삶은 곧 죽음이다. 시간은 미래를 향하고, 과거를 걱정하지 않는다. 행복은 미래에서 온다. 나중에. 

행복이란 놈은 요물이며 고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놈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어차피 녀석은 내 편이 아니니까 난 신경도 안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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