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에 친구 세 명과 베트남 다낭 여행을 하기로 했고 이미 항공권 구매까지 마친 상태였다. 어느날 갑자기 아내가 홈쇼핑에서 다낭 패키지 여행을 덜컥 구매하고 말았다. 하여 나는 계획에 없던 답사 아닌 답사를 다녀오게 됐다.
집에 마땅한 캐리어가 없어서 소셜커머스에서 28인치, 24인치, 20인치 등 각각 하나씩 구매했다. 락앤락 제품인데, 거대한 반찬통으로 오해 받기 십상이다. 여름 짐이라서 그런지 28인치 하나에 세 식구 짐이 거의 다 들어갔고 기내에서 혹시 필요할 수도 있는 물건만 20인치에 챙겼다. 24인치 캐리어는 필요 없었다. 반바지 두 장, 티셔츠 세 장을 새로 샀고 온갖 약도 잘 챙겼다. 내 핀잔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김치, 깻잎, 컵라면 같은 것을 챙겼다. 누가보면 피난 가는 줄 알겠다고 퉁바리를 주었으나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이는 이어폰과 보조 배터리 정도만 챙겼다. 짐 챙기는 것만으로도 이미 베트남에 간 것 같았고 아이와 함께 하는 첫 번째 해외여행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꽤 설렜다.
이스타항공이 다낭-인천 신규 취항을 했는데 인천에서 오후 6시 30분 출발이다. 소위 저가항공은 예전에 진에어를 타본 적이 있었다. 제주행 비행기였는데 딱히 불편함이나 공포(?) 같은 것은 없었고 합리적인 가격인 만큼 탈 만하다고 느꼈다. 깐깐한 보안검사을 마친 뒤 면세점에 잠시 들렸고 다낭을 향해 비행기는 출발했다. 다소 좁기는 했어도 다낭공행 내릴 때까지 불편함 없는 여행이었다. 약 4시간 30분 정도 비행인데 별 지루함 없이 시간이 흘렀다. 오는 비행기는 현지 시간으로 오후 10시 30분 출발인데, 무려 1시간 30분이나 지연됐다. 밤을 꼬박 세워 날아와 날이 희붐한 오전 6시 40분에 인천에 도착했다. 밤 비행기를 타고 오니 시차가 겨우 두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몹시 피곤했다. 평소 잠을 잘 못 자는 형편이라 불편한 비행기 안에서 한숨도 못 잤고 인천에 내리니 온몸에서 진이 빠졌다. 입국 수속을 다 마치고 짐을 찾으러 갔는데 그때까지 짐이 준비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겨우 28인치 캐리어가 뱅글뱅글 도는 벨트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가항공이라 그런 건지 몰라도 다소 불편함이 없지 않았다. 비행 자체는 괜찮은데 사소한 몇 가지는 불편했다. 하나 감수할 만하다.
다낭공항을 빠져 나가니 여행사 가이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은 한국 사람이고 또 한 명은 베트남 현지인이었다. 선후배로 보이는 남자 네 명, 중년 부부 한 쌍, 엄마와 딸 둘, 그리고 우리 가족 세 명 등 모두 12명이 패키지 여행이라는 명목 하에 며칠 동안 유효한 임시 가족이 되었다. 행운인지 몰라도 일행 모두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시간 잘 지키고 개인 행동 안 하고 팀에 불편함을 주지 않았다. 여행사에서 준비한 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는 것이 더 맞을 듯하다. 다만 모든 엘리베이터가 전층을 운행하도록 되어 있어서 복잡한 시간에는 타기가 영 불편했다. 호텔인데, 욕실 한쪽 면이 우리나라 모텔처럼 유리로 되어 있었다. 살짝 당황했는데 마침 블라인드가 있어서 창을 가릴 수 있었다. 아이는 샤워할 때 일부러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을 노크해서 엄마 아빠 시선을 자기 쪽으로 모았다. 욕조 안에서 까불거리는 녀석은 행복해보였고 따라서 나도 행복했다. 하우스 키퍼가 아침에 청소할 때마다 블라인드를 올려두어서 매일 저녁 내가 다시 내려야 했다. 이러구러 첫날이 지났다.
여행좀 했다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한국에서 100달러짜리로 환전을 하고 베트남 현지에서 다시 동(VND)으로 바꾸는 것이 제일 좋다고 했다. 내가 오백 달러, 집사람이 오백 달러 해서 총 1천 달러를 환전했다. 이후 현지에서 우선 삼백 달러를 베트남 동으로 환전했다. 베트남 동은 단위가 너무 커서 계산하기 불편했다. 또 대부분 달러로 결제가 되기 때문에 베트남 동은 없어도 그만이었다. 작은 구멍가게, 노점상도 달러를 다 받았다. 괜히 이래저래 환전하느라 수수료만 나간다. 다음 여행 때는 달러만 준비할 것이다.
베트남 첫인상은 그냥 평범했다. 우리나라 시골 마을 같았고 요즘 서울 더위 정도였다. 이국적인 분위기는 별로 느낄 수 없었다. 베트남 사람은 친절했고 소박했고 순수해보였다. 오래전 일이지만 베트남전쟁 때 한국은 적국이었다. 혹시라도 한국인을 불편해 할까 걱정했는데 그런 인상은 전혀 못 받았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베트남 사람 대부분은 한국 사람을 좋아한다고 했다. 외국인에게 곰살궂진 않아도 헤실헤실 잘 웃어 주었다. 베트남은 마치 70년대 같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도로는 언뜻 매우 복잡해 보였지만 나름대로 질서가 있었다. 마구자비로 유턴을 하는데도 다른 차가 기다려 주고 빵빵거리지 않았다. 여유로워 보였다. 우리나라였다면 아마 욕설이 난무하고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복잡한 듯 질서정연한 모습이었다.
우리 버스를 운전하는 베트남 기사분은 순박해 보였고 운전도 차분하게 잘했다. 현지 가이드 역시 아주 친절하고 소박했다. 더불어 한국어도 비교적 능숙했다. 2년 정도 한국어를 배웠다는데 잘하는 수준이었다. 비자 받기가 어려워서 한국에는 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국에 온다면 내가 가이드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가이드가 여자라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베트남 커피는 그 맛이 상상을 초월했다. 그동안 한국에서 마셔본 커피는 커피가 아니었다. 맛이 풍부하고 진했고 쓴맛이 전혀 없었다. 알고 보니 베트남 커피 생산량은 세계 2위 수준이었다. 뭐든 산지에서 먹는 것이 최고 아니겠는가! 베트남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 딱 하나만 꼽으라면 주저 없이 커피 맛을 꼽겠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그 맛이 자꾸 생각난다. 커피를 좀 사 올까 생각했지만 한국에서 그 맛을 낼 도리가 없어 보여 포기했다.
쌀국수는 한국에서 먹는 거랑 보기에도, 맛도 많이 달랐다. 현지 쌀국수가, 당연한 얘기지만, 훨씬 맛있었다. 면도 많이 다르고 국물 맛도 완전히 달랐다. 더 깊고 풍부했다. 면 종류도 여러 가지였다. 호텔에서 매일 아침 종류가 다른 쌀국수가 나왔지만 현지인들이 먹는 일반 식당에서는 먹어 볼 기회가 없어 아쉬웠다. 한국에서 파는 베트남 쌀국수는 아주 평범한 수준에 불과했다.
완전 베트남 현지식도 한 끼 먹었는데 밥을 빼고는 내 입에 맞지 않았다. 우리나라 시골밥상 엇비슷하게 나오는데 특정 반찬 한두 가지를 빼고는 먹기가 불편했다.
호텔 화장실은 당연히 현대식이고 아주 깨끗하다. 그 외 베트남 화장실은 대부분 수세식이나 구식이다. 구식 화장실이지만 냄새는 전혀 없었다. 보기에는 냄새가 진동할 것 같지만 전혀, 진짜 1만큼도 냄새가 나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화장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 사람이 하도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어딜 가도 와이파이는 다 됐다. 와이파이 안 되는 식당, 커피삽은 한 곳도 보지 못했다. 베트남엔 아직 LTE가 안 되고 3G만 되는데 3G도 느리고 불안했다. 여행 중 전파에 너무 의존하고 싶지 않아서 딱히 불편한 줄은 몰랐다. 혹시 베트남을 간다면 굳이 데이터 로밍을 하지 않아도 크게 불편할 것 같진 않다. 전파가 급하면 대충 아무 가게나 들어가면 와이파이가 된다.
나만 그런지 몰라도 다낭에 볼거리는 별로 없었다. 관광지 대부분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굳이 안 봐도 그만인 정도였다. 다음에 간다면 관광보단 휴식 중심으로 일정을 짜고 싶었다. 마사지는 두 번 받았는데 다 좋았다. 마사지라는 것이 아무리 받아도 물리지 않는 것이니. 마사지하는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어려 보였는데 손결이 거칠었다. 하도 마사지를 많이 해서 굳은살이 생기지 않았나 싶었다. 그녀들은 대부분 생급스럽지 않고 허룽대지도 않았다. 팁 때문에 얼찐거리진 않았지만 5천 원 정도 주니까 아주 좋아했다. 팁을 받을 때 흘리는 미소가 백옥 같이 순수해보였다. 때묻지 않아 보였다. 어쩌면 피곤한 인생인지도 모르겠지만 마음만은 풍족해 보였다. 한국 사람에게서 볼 수 없는 여유가 넘쳤다. 그런 모습이 부러웠다. 처음과 달리 하루, 이틀 지내고 보니 베트남 사람 대부분이 여유로워 보였다. 소득이 더 높은 한국 사람보다 행복해 보였다. 행복은 마음속에 있는 것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베트남엔 비가 지짐대는 경우가 잦아서 휴대가 편한 우산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 잠깐 후드득거리다가 그치기 때문에 여행에 큰 불편은 없다. 그 외 특별한 준비물은 필요 없다.
여행은 추억을 남기는 한편 긴 아쉬움을 남긴다. 마음속에 더께가 너무 두꺼워서 쉬이 떠나지 못한다. 떠날 여유는 없고 떠나지 못할 구실은 많다. 복잡하고 신경질적인 한국에서 그런 여유를 쉽게 만들지 못한다. 짧은 여행이지만 추억이 어룽져 당분간 가슴이 따뜻할 터이다.
눈을 감으면 베트남에서 마신 커피가 떠오르고 파란 남중국해가 보이며 순박한 베트남 사람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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