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 2017

영초 언니

영초 언니는 민주주의를 위해 한평생 몸바친 투사다. 서슬 퍼런 박정희 정권 하에서 그녀는 오직 독재 타도, 민주주의 쟁취라는 명분으로 몸을 불살랐다. 

작사 서명숙 씨는 순전히 최순실 ‘그 여자’ 때문에 이 책을 냈다고 한다. 최순실이 특검에 출두하면서 “여기는 더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라고 말한 것 때문에 말이다. 서명숙 씨와 동시대를 살면서 박정희 독재 정권에 저항한 사람들이 볼 때 최순실 같은 사람이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는 것이 얼마나 같잖았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최순실 따위가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최순실 같은 사람이 법대로 처벌 받는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다. 

민주주의 국가는 모든 국민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다.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누리고 양심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나라다. 우리보다 조금 먼저 사신 분들은 한때 말과 행동, 생각까지 통제 받고 살았다. 
개성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합리적으로 생각을 나누고 이해하는 것이다. 국가가, 사회가 특정 틀에 개인을 가두면 안 된다. 개인도 다른 개인을 구속해서는 안 된다. 즉, 이해와 설득으로 한발짝씩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느리고 어렵다. 

책을 읽는 내내 고통이 가슴을 찔렀고 책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양심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이 무릇 하찮은 듯하지만 누군가 자신에게 다른 철학, 사상, 가치관을 강요한다면 그 고통은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것이다. 민주주의는 정치나 국가에 한정되어 적용되는 가치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숨 쉬는 모든 곳에서, 인간으로 사는 평생 동안 우리와 함께 할 가치다. 


그래도 우리가 이만큼 민주주의를 누리는 것은 영초 언니와 같은 분들이 희생한 덕분이다.   


7월 29, 2017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발칙한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본 소설은 비교적 읽기 무난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간이 안 좋으면 간을 먹고, 위가 안 좋으면 위를 먹고, 그러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크게 보면, 삶과 죽음 두 가지뿐이다.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주제만 남는다. 삶은 유한하고 죽음은 무한하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삶에 대한 애착은 커진다. 병이 생기면,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다면 그 애착은 더욱 커질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다면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느끼지 못한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그 하루가 그 하루일 뿐이다. 비로소 끝이 보이기 시작할 때 이기적인 애착이 가슴속에 돋는다. 

“클래스메이트도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
“…… 없지는 않다, 라고 할까.”
“근데 지금 그걸 안 하고 있잖아. 너나 나나 어쩌면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는 너나 나나 다를 거 없어, 틀림없이. 하루의 가치는 전부 똑같은 거라서 무엇을 했느냐의 차이 같은 걸로 나의 오늘의 가치는 바뀌지 않아. 나는 오늘, 즐거웠어.”

아무리 삶에 대한 애착이 크다고 해도 다가오는 죽음을 막을 길 없다. 하여 좌절하게 되고 머지않아 포기하게 되며 결국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죽음이라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자연사든, 병사든, 사고사든 그날은 꼭 오고야 만다. 산다는 것은 곧 죽음 앞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이다.
죽음은 곧 무(無)를 의미하는 것이다. 딱 한 번 유(有)가 있고 영원한 무(無)가 있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그런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죽음을 준비하고 살지 않기 때문인지 애절함이 없다. 삶이 곧 끝난다고 생각하면 세상 모든 것이 의미 있게 보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왜 어떤 것도 의미 있게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토록 소중한 하루하루를 우리는 얼마나 헛되이 보내고 있는지.

“죽음을 마주하면서 좋았던 점이라면 매일매일 살아 있다고 실감하면서 살게 된 거야.”

“아니, 우연이 아냐. 우리는 모드 스스로 선택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 너와 내가 같은 반인 것도, 그날 병원에 있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야. 그렇다고 운명 같은 것도 아니야. 네가 여태껏 해온 선택과 내가 여태껏 해온 선택이 우리를 만나게 했어.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만난 거야.”

삶이 끝나가는 시점에 인생을 돌아보면 후회로 가득찰 것이다. 자신 인생에 대한 책임, 주변 사람에 대한 책임.
타인과 어울리는 삶, 나 혼자가 아닌, 주변인과 어울리는 삶. 그들이 있어 내 삶은 작은 역사가 된다. 

그녀는 타인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온 인간이다. 표정이나 인간성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에 반해 나는 가족 이외의 모든 인간관계를 머릿속의 상상으로만 완결시켜왔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도 나를 싫어한다는 것도 모두 나만의 상상이고, 내게 위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타인과의 관계는 처음부터 포기한 채 살아왔다. 그녀와는 정반대로, 주위의 어느 누구에게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사람이다. 그것으로 괜찮으냐고 굳이 묻는다면 좀 난처하긴 하지만. 

다른 선택도 가능했을 텐데 나는 분명코 나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했고, 그 끝에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 이전과는 달라진 나로서 이곳에 존재한다…….어느 누구도, 나조차도, 사실은 풀입 배 따위가 아니다. 휩쓸려가는 것도 휩쓸려가지 않는 것도 우리는 분명하게 선택한다. 그것을 가르쳐준 것은 한 치의 틀림도 없이 그녀였다. 

혼자가 아닌 삶, 누군가와 동행하는 삶, 내 의지로 사는 삶. 꽃처럼 슬프지만 영원을 향해 스러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따뜻한 끈, 인연.

그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죽더라도 영원히…… 


7월 26, 2017

디지털 라이프

'아날로그는 감성적이다', 라고 하는데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무슨 감성? 감성적이라고 해도 효율적이고 편리한 것이 나는 더 좋다.
예전에 어떤 배우가 TV에서 자기는 디지털이 싫어서 아직도 손 편지를 쓴다고 하는 걸 본 적 있다. 손 편지를 쓰든, 이메일을 쓰든 그분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디지털은 메말랐고 손 편지는 정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손 편지든, 이메일이든 그 내용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필요하다면 더 효율적인 것이 더 낫지 않은가? 
수고스럽고 번거로운 것은 정성이 있는 것이고, 이메일로 보내면 정성이 부족한 것인지. 그때 그분은 아직 스마트폰을 안 쓰고 파발이나 봉화를 쓰는지 모르겠다. 그런 뉴스를 본 적 없으니 그분도 아마 스마트폰을 쓰는 듯하다. 

신용카드, 비행기, 자동차, 스마트 폰 등 디지털 없이 굴러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종이 책도 디지털로 빚어진 결과물일 뿐이다. 옛것을 보면 향수를 느끼고 그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굳이 디지털이 싫다고 표현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본인이 그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잘 모른다고 해서 폄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사실 위 글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몇 가지를 소개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아래 여섯 가지는 내게 반드시 필요한, 매일 사용하는 생산성 도구이다. 물론 대체 가능한 다른 도구도 많이 있다. 어쩌다 보니 내가 정착한 앱이다. 

올해, 지금까지 읽은 책은 딱 백 권이다. 현재 백 권째 책을 읽는 중이다. 백 권 중 두세 권을 제외하고 전부 전자책으로 읽었다. 읽고 싶은데 전자책으로 나와 있지 않은 것만 종이 책을 사서 읽었다. 전자책에 적응되어 이제 종이 책은 읽기가 싫다. 무겁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이백 권을 읽을 목표를 세웠는데 전자책이 큰 도움이 됐다. 전자책을 읽으면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언제, 어디서든 독서가 가능하다. 
스마트폰을 늘 휴대하기 때문에 장소불문 독서가 가능하다. 이는 가장 큰 장점이다. 책을 더 많이, 더 자주, 더 빨리 읽으려면 전자책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자동차 대시보드 위 휴대전화 거치대에 스마트폰을 걸어 놓고 출퇴근길에 독서를 하면 차가 막혀도 짜증나지 않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물론 차가 달릴 때는 읽을 수도 없고 읽어서도 안된다. 차가 서행하거나 신호 대기 중일 때 짬짬이 독서를 해도 상당한 양을 읽을 수 있다. 

휴대가 편하다. 
스마트폰 메모리가 허락하는 한 몇백, 몇천 권도 가지고 다닐 수 있다. 메모리가 부족하다면 불필요한 책은 지우면 된다. 나중에 얼마든지 다시 다운 받을 수 있다. 책을 로컬 메모리에 다운 받기 때문에 읽을 때 전파가 필요 없다. 집에 책을 쌓아둘 필요가 없는 것 역시 아주 큰 장점이다. 백 권이라고 해도 상당한 공간을 차지한다. 

모든 장치에 동기화 된다.
맥, 아이폰, PC, 태블릿 등 모든 전자 장치에서 동기화가 되므로 이 장치에서 저 장치로, 저 장치에서 이 장치로 필요할 때마다 옮겨 읽을 수 있다. 책상에서 맥으로 읽다가 화장실 가서 아이폰으로 이어서 읽을 수 있다. 집에서 맥으로 읽다가 커피샵 가서 아이폰으로 이어서 읽을 수 있다. 그 반대도 당연히 가능하다. 물론 종이 책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전자책 대비 불편하다. 
 
화면 최적화
전자책은 해당 장치 화면에 자동으로 최적화되기 때문에 종이 책보다 훨씬 보기 편하다. 자기는 노안이라 전자책은 못 본다고 하는 사람도 있던데 그건 틀린 말이다. 글자 크기 조절도 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크기가 고정된 종이 책보다 훨씬 보기가 좋다. 

메모 및 검색 용이
메모하기 편하고 필요한 내용은 캡처해서 보관할 수 있다. 검색이 가능하다는 것 역시 큰 장점 중 하나다.
  
사자마자 바로 읽을 수 있다. 
번거롭게 서점에 왔다갔다 할 필요가 없다. 

가격이 저렴하다. 
종이 책 대비 약 30% 정도 저렴하다. 책을 많이 읽는다면 이 금액을 무시 못 한다. 

모든 자료를 에버노트에 정리한다. 정리하기 편하고 찾기 편하다. 늘 액세스가 가능하다. 
신용카드, 보안카드도 에버노트에 저장해 두고 필요할 때 찾아 본다. 위험하지 않냐고 하는데, 내 생각엔 신용카드, 보안카드를 지갑 속에 넣고 다니는 것이 천만 배는 더 위험하다. 
이력서 관리에 최적이다. 
프로젝트 관리에 최적이다. 
개별 노트를 링크로 연결하면 아주 편리하다. 
자료 분산, 파편화를 피할 수 있다. 
검색이 용이하다. 'cmd + J' 검색은 정말 편하고 빠르다. 
에버노트는 아주 간단한 메모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일요일 아침 동네 목욕탕에 가는데 정장을 입고 갈 필요는 없다. 간단한 메모는 다른 앱을 쓰는 게 좋다.(구글 킵, 아이폰 기본 메모 앱 등)

모든 할 일은 여기에 정리한다. 할 일이 생각나면 일단 분더리스트에 적는다. 그리고 해야 할 날짜를 맞춰 두면 끝. 뇌를 비울 수 있다. 
매주, 매월, 매년 반복해야 할 일이 있다면 반복 설정이 가능하다. 최초 한 번만 설정하면 해당 날짜에 맞춰 오늘 할 일에 나타난다. 
간단한 메모가 가능하다. 굳이 다른 앱을 쓸 필요없이 분더리스트에서 메모할 수 있다. 
할 일 외에도 다양한 리스트를 만들 때 좋다. 예를 들어 점심 메뉴, 맛집 정리, 읽을 책, 살 것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다. 
파일 첨부가 가능하고 공유 및 태그도 가능하다. 
Things, Omnifocus 같은 걸출한 앱이 있지만 비싸다. 분더리스트는 무료 버전으로도 충분히 값지게 쓸 수 있다. 

모든 일정은 여기에 기록한다. 종이 달력은 안 쓴다. 
모든 캘린더 앱은 기본적으로 구글 캘린더를 지원한다. 필요에 따라, 본인이 좋아하는 앱을 쓰면 된다. 웹 버전도 충분히 편리하다.  
매주, 매월, 매년 반복해야 할 일정이 있다면 반복 설정이 가능하다. (예. 카드 결제일, 생일 등) 

대략 지난 10년 동안 모든 일정이 구글 캘린더에 기록되어 있다. 물론 지난 일정을 찾아보는 일은 별로 없다. 그래도 가끔 예전 일정을 찾아 보면서 흐뭇해 할 때가 있다. 종이 달력에 볼펜으로 적는 것보다 깔끔하고 보기 편하고 수정하기 좋기 때문에 쓴다. 종이 캘린더에 삐뚤삐뚤 쓴 것은 보기 흉하다. 고치려면 줄을 그어야 한다. 보기 싫다. 무엇보다 종이 달력은 그 달력에서 벗어나면 볼 수가 없다. 아니면 종이 달력을 항상 지니고 다닐 수밖에. 

파일 백업용이며 간단한 문서 작업용이다. 
파일 대부분은 에버노트에서 관리하지만 혹시 몰라서 구글 드라이브에 백업한다. 자동으로 백업되니 불편하거나 번거롭지 않다. 
무엇보다 사진 저장용으로 최고다. 스마트폰에서 찍은 사진은 전부 자동으로 백업된다. 이거 하나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게다가 '고화질 저장'으로 설정하면 비용 없이 무제한 저장이 가능하다. 

카톡, 슬랙 등이 있지만 그래도 이메일 커뮤니케이션만 한 건 없다. 진득이 고민해서 한 줄 한 줄 쓴 메일이 좋다. 
메신저는 너무 즉흥적이다. 생각을 정리해서 얘기를 나누기 어렵다. 가벼운 얘기라면 메신저를 쓰면 되지만, 깊이가 있는 얘기, 업무에 관련된 내용은 메일로 나누는 것이 정석이다. 
메신저는 상대방에게 ‘빨리 대답해줘’ 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생각할 시간,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것이 예의다. 
메신저로 상대방 업무를 방해하지 마시라.  

적고 보니 리디북스와 에버노트만 유료로 사용 중이고 나머지는 전부 무료로 쓰고 있다.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본인 편한 대로 쓰면 된다. 세상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없다.  

7월 17, 2017

다낭 여행

2018년 1월에 친구 세 명과 베트남 다낭 여행을 하기로 했고 이미 항공권 구매까지 마친 상태였다. 어느날 갑자기 아내가 홈쇼핑에서 다낭 패키지 여행을 덜컥 구매하고 말았다. 하여 나는 계획에 없던 답사 아닌 답사를 다녀오게 됐다. 
집에 마땅한 캐리어가 없어서 소셜커머스에서 28인치, 24인치, 20인치 등 각각 하나씩 구매했다. 락앤락 제품인데, 거대한 반찬통으로 오해 받기 십상이다. 여름 짐이라서 그런지 28인치 하나에 세 식구 짐이 거의 다 들어갔고 기내에서 혹시 필요할 수도 있는 물건만 20인치에 챙겼다. 24인치 캐리어는 필요 없었다. 반바지 두 장, 티셔츠 세 장을 새로 샀고 온갖 약도 잘 챙겼다. 내 핀잔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김치, 깻잎, 컵라면 같은 것을 챙겼다. 누가보면 피난 가는 줄 알겠다고 퉁바리를 주었으나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이는 이어폰과 보조 배터리 정도만 챙겼다. 짐 챙기는 것만으로도 이미 베트남에 간 것 같았고 아이와 함께 하는 첫 번째 해외여행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꽤 설렜다. 

이스타항공이 다낭-인천 신규 취항을 했는데 인천에서 오후 6시 30분 출발이다. 소위 저가항공은 예전에 진에어를 타본 적이 있었다. 제주행 비행기였는데 딱히 불편함이나 공포(?) 같은 것은 없었고 합리적인 가격인 만큼 탈 만하다고 느꼈다. 깐깐한 보안검사을 마친 뒤 면세점에 잠시 들렸고 다낭을 향해 비행기는 출발했다. 다소 좁기는 했어도 다낭공행 내릴 때까지 불편함 없는 여행이었다. 약 4시간 30분 정도 비행인데 별 지루함 없이 시간이 흘렀다. 오는 비행기는 현지 시간으로 오후 10시 30분 출발인데, 무려 1시간 30분이나 지연됐다. 밤을 꼬박 세워 날아와 날이 희붐한 오전 6시 40분에 인천에 도착했다. 밤 비행기를 타고 오니 시차가 겨우 두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몹시 피곤했다. 평소 잠을 잘 못 자는 형편이라 불편한 비행기 안에서 한숨도 못 잤고 인천에 내리니 온몸에서 진이 빠졌다. 입국 수속을 다 마치고 짐을 찾으러 갔는데 그때까지 짐이 준비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겨우 28인치 캐리어가 뱅글뱅글 도는 벨트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가항공이라 그런 건지 몰라도 다소 불편함이 없지 않았다. 비행 자체는 괜찮은데 사소한 몇 가지는 불편했다. 하나 감수할 만하다. 

다낭공항을 빠져 나가니 여행사 가이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은 한국 사람이고 또 한 명은 베트남 현지인이었다. 선후배로 보이는 남자 네 명, 중년 부부 한 쌍, 엄마와 딸 둘, 그리고 우리 가족 세 명 등 모두 12명이 패키지 여행이라는 명목 하에 며칠 동안 유효한 임시 가족이 되었다. 행운인지 몰라도 일행 모두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시간 잘 지키고 개인 행동 안 하고 팀에 불편함을 주지 않았다. 여행사에서 준비한 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는 것이 더 맞을 듯하다. 다만 모든 엘리베이터가 전층을 운행하도록 되어 있어서 복잡한 시간에는 타기가 영 불편했다. 호텔인데, 욕실 한쪽 면이 우리나라 모텔처럼 유리로 되어 있었다. 살짝 당황했는데 마침 블라인드가 있어서 창을 가릴 수 있었다. 아이는 샤워할 때 일부러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을 노크해서 엄마 아빠 시선을 자기 쪽으로 모았다. 욕조 안에서 까불거리는 녀석은 행복해보였고 따라서 나도 행복했다. 하우스 키퍼가 아침에 청소할 때마다 블라인드를 올려두어서 매일 저녁 내가 다시 내려야 했다. 이러구러 첫날이 지났다. 

여행좀 했다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한국에서 100달러짜리로 환전을 하고 베트남 현지에서 다시 동(VND)으로 바꾸는 것이 제일 좋다고 했다. 내가 오백 달러, 집사람이 오백 달러 해서 총 1천 달러를 환전했다. 이후 현지에서 우선 삼백 달러를 베트남 동으로 환전했다. 베트남 동은 단위가 너무 커서 계산하기 불편했다. 또 대부분 달러로 결제가 되기 때문에 베트남 동은 없어도 그만이었다. 작은 구멍가게, 노점상도 달러를 다 받았다. 괜히 이래저래 환전하느라 수수료만 나간다. 다음 여행 때는 달러만 준비할 것이다. 

베트남 첫인상은 그냥 평범했다. 우리나라 시골 마을 같았고 요즘 서울 더위 정도였다. 이국적인 분위기는 별로 느낄 수 없었다. 베트남 사람은 친절했고 소박했고 순수해보였다. 오래전 일이지만 베트남전쟁 때 한국은 적국이었다. 혹시라도 한국인을 불편해 할까 걱정했는데 그런 인상은 전혀 못 받았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베트남 사람 대부분은 한국 사람을 좋아한다고 했다. 외국인에게 곰살궂진 않아도 헤실헤실 잘 웃어 주었다. 베트남은 마치 70년대 같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도로는 언뜻 매우 복잡해 보였지만 나름대로 질서가 있었다. 마구자비로 유턴을 하는데도 다른 차가 기다려 주고 빵빵거리지 않았다. 여유로워 보였다. 우리나라였다면 아마 욕설이 난무하고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복잡한 듯 질서정연한 모습이었다.  
우리 버스를 운전하는 베트남 기사분은 순박해 보였고 운전도 차분하게 잘했다. 현지 가이드 역시 아주 친절하고 소박했다. 더불어 한국어도 비교적 능숙했다. 2년 정도 한국어를 배웠다는데 잘하는 수준이었다. 비자 받기가 어려워서 한국에는 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국에 온다면 내가 가이드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가이드가 여자라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베트남 커피는 그 맛이 상상을 초월했다. 그동안 한국에서 마셔본 커피는 커피가 아니었다. 맛이 풍부하고 진했고 쓴맛이 전혀 없었다. 알고 보니 베트남 커피 생산량은 세계 2위 수준이었다. 뭐든 산지에서 먹는 것이 최고 아니겠는가! 베트남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 딱 하나만 꼽으라면 주저 없이 커피 맛을 꼽겠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그 맛이 자꾸 생각난다. 커피를 좀 사 올까 생각했지만 한국에서 그 맛을 낼 도리가 없어 보여 포기했다. 
쌀국수는 한국에서 먹는 거랑 보기에도, 맛도 많이 달랐다. 현지 쌀국수가, 당연한 얘기지만, 훨씬 맛있었다. 면도 많이 다르고 국물 맛도 완전히 달랐다. 더 깊고 풍부했다. 면 종류도 여러 가지였다. 호텔에서 매일 아침 종류가 다른 쌀국수가 나왔지만 현지인들이 먹는 일반 식당에서는 먹어 볼 기회가 없어 아쉬웠다. 한국에서 파는 베트남 쌀국수는 아주 평범한 수준에 불과했다.  
완전 베트남 현지식도 한 끼 먹었는데 밥을 빼고는 내 입에 맞지 않았다. 우리나라 시골밥상 엇비슷하게 나오는데 특정 반찬 한두 가지를 빼고는 먹기가 불편했다. 

호텔 화장실은 당연히 현대식이고 아주 깨끗하다. 그 외 베트남 화장실은 대부분 수세식이나 구식이다. 구식 화장실이지만 냄새는 전혀 없었다. 보기에는 냄새가 진동할 것 같지만 전혀, 진짜 1만큼도 냄새가 나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화장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 사람이 하도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어딜 가도 와이파이는 다 됐다. 와이파이 안 되는 식당, 커피삽은 한 곳도 보지 못했다. 베트남엔 아직 LTE가 안 되고 3G만 되는데 3G도 느리고 불안했다. 여행 중 전파에 너무 의존하고 싶지 않아서 딱히 불편한 줄은 몰랐다. 혹시 베트남을 간다면 굳이 데이터 로밍을 하지 않아도 크게 불편할 것 같진 않다. 전파가 급하면 대충 아무 가게나 들어가면 와이파이가 된다. 

나만 그런지 몰라도 다낭에 볼거리는 별로 없었다. 관광지 대부분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굳이 안 봐도 그만인 정도였다. 다음에 간다면 관광보단 휴식 중심으로 일정을 짜고 싶었다. 마사지는 두 번 받았는데 다 좋았다. 마사지라는 것이 아무리 받아도 물리지 않는 것이니. 마사지하는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어려 보였는데 손결이 거칠었다. 하도 마사지를 많이 해서 굳은살이 생기지 않았나 싶었다. 그녀들은 대부분 생급스럽지 않고 허룽대지도 않았다. 팁 때문에 얼찐거리진 않았지만 5천 원 정도 주니까 아주 좋아했다. 팁을 받을 때 흘리는 미소가 백옥 같이 순수해보였다. 때묻지 않아 보였다. 어쩌면 피곤한 인생인지도 모르겠지만 마음만은 풍족해 보였다. 한국 사람에게서 볼 수 없는 여유가 넘쳤다. 그런 모습이 부러웠다. 처음과 달리 하루, 이틀 지내고 보니 베트남 사람 대부분이 여유로워 보였다. 소득이 더 높은 한국 사람보다 행복해 보였다. 행복은 마음속에 있는 것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베트남엔 비가 지짐대는 경우가 잦아서 휴대가 편한 우산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 잠깐 후드득거리다가 그치기 때문에 여행에 큰 불편은 없다. 그 외 특별한 준비물은 필요 없다. 

여행은 추억을 남기는 한편 긴 아쉬움을 남긴다. 마음속에 더께가 너무 두꺼워서 쉬이 떠나지 못한다. 떠날 여유는 없고 떠나지 못할 구실은 많다. 복잡하고 신경질적인 한국에서 그런 여유를 쉽게 만들지 못한다. 짧은 여행이지만 추억이 어룽져 당분간 가슴이 따뜻할 터이다. 

눈을 감으면 베트남에서 마신 커피가 떠오르고 파란 남중국해가 보이며 순박한 베트남 사람들이 보인다.  

7월 01, 2017

깊은 강

상처 입은 영혼을 가진 사람, 납덩이처럼 무거운 슬픔을 가슴속 깊은 곳에 숨겨둔 사람. 죽음, 이별, 질병, 고독, 전쟁 같은. 
사람이면 누구나 이런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인생이라는 긴 여정 속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픔은 가슴속 깊이 떠있다가 뼈를 저미는 고독과 함께 거북 목처럼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이소베는 아내의 입술에 귀를 갖다 댔다. 숨이 끊어질 듯 말 듯한 목소리로 필사적으로 띄엄띄엄 뭔가 말하고 있다.“나…… 반드시…… 다시 태어날 거니까, 이 세상 어딘가에. 찾아요…… 날 찾아요…… 약속해요, 약속해요.”

구원을 바라고 환생을 바라고 치유를 바라는 사람들.
고독은 때론 우리에게 용기를 주기도 한다. 잘못을 뉘우치게 만들기도 하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기도 한다. 
절망이라는 늪은 모든 것을 빨이들이지만 영혼을 구원할 희망을 찾아야 한다. 

밤이 깊도록 작업을 계속하는 누마다와 이를 응시하는 코뿔소새와의 영혼의 교류를 아내가 이해할 리 없었다. 누마다는 어떤 부부건 간에, 서로 용해될 수 없는 고독이 있음을 결혼 생활을 지속하면서 알았다. 그러나 그 자신의 고독과 이 새의 고독은 밤의 정적 속에서 서로 통한다. 

누마다는 아내한테 미안했다. 소년 때부터 누마다는 늘 인간이 아닌 개나 새한테 마음의 비밀을 털어놓곤 했다. 이번 경우에도, 거듭되는 수술의 실패로 우울해진 기분을 그 코뿔소새 같은 새한테 고백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아내는 어느 틈엔가 꿰뚫어 보았다. 

질병은 사람을 피폐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든다. 똥, 오줌 가리는 것도 사치스럽게 만든다.
전쟁은 인간을 극한으로 몰아간다. 
죽음은 때로 희망이고 휴식이다. 환생을 믿는다면 죽음은 또 다른 기회임이 분명하다.  

두어 달 전에 인도 북쪽 카무로지 마을에서 일본인으로 전생을 살았다는 소녀의 이야기가 보고되었습니다. 다만 그녀가 오빠 언니에게 이 이야기를 한 것이 네 살 때여서, 저희가 전생 기억자의 조건에 넣은 세 살까지의 나이를 넘긴 탓에 조사대상에서 제외했으나, 만일을 고려해 당신의 요청대로 연락드립니다. 그녀의 이름은 라지니 푸니랄, 그녀의 생가가 있는 카무로지 마을은 갠지스 강변 바라나시 근처에 있으며……”
  
왔다가 가는 것은 신이 준 당연한 이치지만 삶과 인생을 공유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기 마련이다. 죽음이 안타까운 건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그 흔적은 지워지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서 더 크게 갑자기 소나기가 오듯 나타난다.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간절함을 배운다. 비록 때가 늦었더라도.  
바람 빠진 자전거 바퀴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과거에 대한 회상. 회상은 늘 아쉬움을 남기고 후회를 그려낸다. 미련이 남은 과거로 돌아간다 한들 무엇을 바꿀 것인가!
시간은 이미 흘러서 되돌릴 수 없는데 가슴은 허위허위 공허하다. 

정신적 구원! 
간절함이 하늘에 닿으면 뜻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갠지스강을 볼 때마다 저는 양파를 생각합니다. 갠지스강은 썩은 손가락을 내밀어 구걸하는 여자도, 암살당한 간디 수상도 똑같이 거절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재를 삼키고 흘러갑니다. 양파라는 사랑의 강은 아무리 추한 인간도 아무리 지저분한 인간도 모두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흘러갑니다.”

인간이 이토록 슬픈 데 주여,
바다가 너무도 푸르릅니다.
~ 침묵의 비(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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