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08, 2017

호모 데우스

현대 사회는 대체로 호화롭고 부족함 없는 곳이다. 우리가 이런 풍족한 삶을 누리는 이유는 운 좋게 사피엔스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사자나 돼지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행운이 머지 않아 사라질 수도 있다. 사자, 코끼리, 원숭이, 닭, 돼지 등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 사피엔스는 무엇이 다른가?

사자는 먹을 것만 좇는다. 돼지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먹는 것, 자는 것, 생식 활동 외에 다른 문화는 없다. 적어도 우리가 볼 땐 그렇다. 지능과 인식, 상호 주관적 실재에 대한 합의, 이런 것들이 오늘날 사피엔스를 있게 만들었다. 사자가 임팔라를 죽였다는 이유로 법정에 설 일은 없다. 독버섯이 독을 가지고 있다고 식약처에 신고할 이유도 없다. 

사피엔스는 수많은 실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했다. 저절로 그렇게 된 것 외에 사피엔스가 창조하지 않은 건 단 하나도 없다.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법, 가치, 화폐, 도덕, 종교도 모두 사피엔스가 창조한 것이다. 이 창조물은 사회적 약속이며 구성원 상당수가 인정하고 인지해야만 가치를 가지게 된다. 또는 국가, 경제, 문화, 역사, 권력의 힘으로 강제하면 한다. 아무도 화폐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무용지물이 됐을 것이다. 
사자에게 임팔라 한 마리 가질래? 백만 원 가질래? 물어 보면 답은 뻔하다. 원숭이에게 바나나 열 개 가질래? 오천 원 가질래? 물어 보면 답은 뻔하다. 만약 화폐를 선택하는 짐승을 봤다면 당신은 즉시 병원에 가 보는 것이 좋다. 
다른 동물들이 국가, 경제, 역사, TV, 아이폰, 전파, 화장품 같은 것을 가질 수 없는 이유는 이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고, 인지혁명, 농업혁명, 산업혁명 등 사피엔스가 오랜 기간 거쳐 이룬 놀라운 역사의 방관자였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방관자라는 것 자체마저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인류는, 사피엔스는 거대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전 지구적, 전 우주적 네트워크 세상이 될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이 네트워크로 연결될 것이다. 우리는 종일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안에서 논다.  네트워크를 통해 친구를 만난다. 잠시라도 네트워크를 떠나면 답답하고 불안하다. 
나는 학교 다닐 때도 안 가지고 다니던 백팩을 매일 등에 지고 다닌다. 가방 안에는 맥북이 들어 있다. 언제 어디서든지 네트워크에 접속하기 위해서다. 손에는 늘 아이폰이 잡혀 있고, 아이패드와 애플워치도 살까말까 계속 고민 중이다. 하지만 현재 네트워크와는 차원이 다른 네트워크 세상이 올 것이라고 한다.   

부지불식간에 우리 모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거대한 네트워크로 연결될 것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사피엔스에게는 마음과 의식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마음과 의식이 없으면 그게 인간이냐고 되물을 수 있지만 마음과 의식은 머지 않아 쓸모없는 것이 될 것이라고 한다. 거대한 알고리즘, 빅데이터, 네트워크가 우리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통제할 것이다. 움직이고 생각하는 모든 것, 그저 서 있는 건물 같은 것, 공포와 쾌감 같은 의식적인 것도 알고리즘이 통제할 것이다. 사피엔스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컴퓨터는 다르다. 또한 순식간에 그 기억을 찾아낸다. 현재 사피엔스 뇌는 절대로 빅데이터와 네트워크로 무장한, 알고리즘의 명령을 받는 컴퓨터를 이길 수 없다. 

인간은 '자연 선택'으로 진화한 아주 정교한 유기적 알고리즘이다. 현존하는 가장 정교한 컴퓨터라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 몸, 우리 의식, 우리 영혼이 고도로 정교하게 짜여진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인다는 뜻이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과학 기술이 이런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이런 것을 하나씩 증명해 내고 있다. 현대 생명과학은 우리가 자유 의지대로 움직이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프로그래밍 된 것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하고 생각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오늘 점심에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그럼 이것은 자유 의지로 결정한 것이 아닌가? 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전에 즉, 뭘 먹을 것인가 결정하기 전에 이미 우리는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프기 때문에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이다. 그럼 배가 고픈 것은 우리 자유 의지인가 아닌가? 만약 배고픈 것이 자유 의지라면, 배고플 때 ‘배고프지 마’ 라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시대는 인간이 최고 가치라고 가르친다. 누구도 인간이 최고 가치임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가 그런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인간만이 눈물을 흘릴 줄 알고 사랑할 줄 알기 때문이며 인간만이 철학을 할 줄 알기 때문이다. 즉, 마음이 있고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는 빅데이터를 가진 그 무언가가 나타난다면 인류의 가치는 여지없이 무너질 것이다. 굳이 마음이 필요하지 않고 의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운전을 하는 데 마음이 필요한가? 모든 차량이 네트워크로 연결된다면 굳이 의식을 가진 운전자가 필요한가? 오히려 네트워크로 연결된 차량은 절대 사고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네트워크는 마음이 없고 의식이 없기 때문에 다른 차량을 방해하지 않고 정해진 대로 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차량이 끼어든다고 해서 상향등을 켜고 빵빵거리며 위협 운전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이동수단 중에 가장 사고가 적은 것은 비행기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뜨고 내리는 전 세계 모든 비행기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모든 비행기 항로가 파악되고 통제되기 때문에 사고가 날 확률이 현저하게 줄어 든다. 의식이 없다는 것은 사고(事故)가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사피엔스가 의식적으로 어떤 이성을 사랑한다고 치자. 며칠 지나지 않아 분명 사고가 난다. 상대방은 나로 인해 행복하기도 하겠지만 상처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고가 잦으면 결국 헤어지고 만다. 이런 일은 의식 때문에, 마음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욕심과 가치 판단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만약 컴퓨터가 어떤 여자를 사랑한다면 컴퓨터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여자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화를 내도, 아무리 쇼핑을 오래 해도, 화장하느라 매일 약속 시간에 늦어도 컴퓨터는 절대로 화내지 않을 것이다.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의식은 없지만 컴퓨터는 그 여자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 10년간 운동량, 혈압 추이, 몸무게 변동 추이 등. 의식이 있는 남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할 수는 있다고 해도 정확하게 할 수 없다. 

사피엔스와 사피엔스의 의식, 거의 모든 직업이 디지털화 될 것이다. 대규모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한치 오차 없는 전 지구적, 전 우주적 디지털 공동체가 형성될 것이다. 이런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최상위 명령자는 바로 다름 아닌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명령할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프로그래밍 될 것이다. 사피엔스의 마음, 의식마저도. 이미 우리 주변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AI, 자율 주행 등. 
이런 날이 오면 사피엔스가 사자, 돼지 같은 동물과 무엇이 다른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인간 동물원에 갇혀서 인공지능 컴퓨터가 던져 주는 바나나를 받아 먹을지도 모르고 하루 종일 주인 없는 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주인이 오는 기척이 들리면 개처럼 문 앞에서 딸랑거릴지도 모른다. 

알고리즘은 지치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편견이 없다. 오류가 없고 감정이 없다. 그리고 정확하다. 
사피엔스의 마음, 의식은 거추장스럽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전작 [사피엔스]와 마찬가지로 [호모 데우스] 역시 놀라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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